지구는 둥글다. 그리고 둥근 지구는 수없이 동그란 것들로 가득하다. 오늘 소개할 정현자 작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동그라미’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동그라미를 그림의 화두로 삼고 작품활동에 천착하며 주목받고 있다. 본지에서는 섬진강변 줄기가 흐르고 명산 백운산과 지리산에 둘러싸인 경치가 일품인 곳에 화실을 두고 그림을 그리며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정현자 작가를 인터뷰했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 ‘풀꽃 그리기 공방’과 ‘모래 갤러리’를 운영 중인 정현자 작가는 ‘동그라미 작가’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는 주부로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던 어느 날 대파를 썰다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작품의 화두를 포착하게 됐다. 바로 동그라미였다. “하루는 제가 썰어 놓은 대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에 겹겹이 이뤄진 대파가 하나씩 분해되며 굴러다니는데 모두 동그라미였습니다. 여기도 동그라미, 저기도 동그라미, 전부 동그라미뿐이었죠.” 주방에서 동그라미를 찾는 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린 정현자 작가는 이후 동그라미를 주제로 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냈으며, ‘2024 한강 비엔날레’ 초대작가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늦은 나이에도 젊은 학생들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지니며 호남대학교 미대를 수석 졸업한 정현자 작가는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 전공을 마쳤으며, 현재 개인전 6회를 비롯해 다수 단체전 및 아트페어 등에 참가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동그라미
“동그라미는 얼핏 하나의 점 같지만 우주와도 같습니다. 제가 텃밭을 일굴 때, 동그란 씨를 하나 심으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동그란 열매가 맺힙니다. 그때 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사실 가만히 잘 살펴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동그라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동그라미를 그림의 화두로 삼아 여러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동그라미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정현자 작가는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이기보다는 단순한 형태로 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그는 ‘자연이 나의 선생님’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연과의 교감으로 작품을 구상한다. 실제로 녹차 밭도 일구어 차(茶)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도 해봤을 정도로 정현자 작가는 자연을 아끼고 사랑한다. 이러한 정현자 작가의 성향은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들며, 여기에 음악적 요소와 채도를 낮춘 색감 등이 더해지면서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정겨운 느낌이 깃든 그림이 완성된다. 이 때문일까. 정현자 작가의 그림을 본 수많은 관람객은 따뜻하고 군더더기가 하나 없는 작품이라고 평했으며, 앞으로도 그는 남녀노소에게 큰 감흥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상처 시리즈’도 선보일 것
“저는 조지아 오키프, 쿠사마 야요이를 존경합니다. 이 여성 작가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정서는 지독한 외로움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독한 외로움을 작품으로 승화하여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킴으로써 훌륭한 예술가로 거듭났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는 ‘동그라미 시리즈’뿐만 아니라 ‘상처 시리즈’도 선보이고 싶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받았던 상처, 또 다른 사람들의 상처 등을 작품에 녹여내 그 상처가 스스로 아물어가는 모습까지 화폭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상처와 고통이라는 감정까지 예술로 표현해내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그저 그림을 많이 그리는 작가보다는 가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밝힌 정현자 작가. 이를 위해 그는 독일 철학자들의 작품을 비롯한 독서를 즐김으로써 더욱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으로써 정현자 작가가 앞으로도 국내외를 막론한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오랜 세월이 흘러도 후세에 많은 영감과 영향력을 주는 명작을 탄생시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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