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배는 자신의 작품을 '공간 속 드로잉'이라 말한다.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그의 작업은 거미줄이나 산호가 얽혀 있는 듯한 형상과 원형의 곡선으로 만들어진 비정형을 보여주며 동시에 물방울같이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성을 가진다. 코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형태는 하나의 뿌리와 줄기로부터 식물을 보는 듯하기도 하고, 나무의 곡선, 유영하는 생명체나 유기체로 보이기도 한다. 얽힌 선들의 집합체가 갖는 곡면은 보는 이에게 철제 재료를 날렵하고 가볍게 느껴지게 하고, 비상하는 듯한 운동성으로 다가온다. 불과 손을 사용하여 제작된 철이 무거운 속성에서 벗어나, 공간 속에 놓이며 보는 시점과 시각에 따라 다른 운동성을 가지고, 공간에 입체적으로 그려진 드로잉으로 다가온다.
1층과 지하 전시장에는 1960년대 작가의 초기작부터 1990년대 작품을 아우른다. 프랫 인스티튜트 재학 중 제작된 유화 작업 〈Trompe L'oeil〉(1960)에서 산업디자인으로부터 점차 조각, 순수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존 배의 모습이 드러난다. 초기작 〈Untitled〉(1963)는 프랫 인스티튜트에서의 교육과 조각가 테오도르 로스작(Theodore Roszak), 캘빈 앨버트(Calvin Albert) 등을 통해 구축주의의 영향을 받은 1960년대 작업을 대표한다. 자동차, 기계 부품이라는 재료와 그것들이 자아내는 유기적 형태 사이의 긴장감에서 자연과의 교향적 구조를 융합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선, 면, 부피의 삼대 구성 요소와 다양한 질감이 부각되고, 제스처적인 측면과 구성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움직임, 긴장, 대조의 효과를 연상시킨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간에서의 드로잉'으로써 그만의 예술관이 확립되기 시작된다. 〈Untitled 1970, Entitled 2021〉는 "어떻게 공간 속에서 드로잉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공중 속의 틀에서 작업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대형 작품을 예상했으나 정해진 결과 없이 조각과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존 배 특유의 즉흥적 과정으로 현재의 이미지에 이르렀다. 〈Involution〉(1974)과 〈Sphere with Two Faces〉(1976)는 시작과 끝이 모호한 뫼비우스 띠처럼 구 안에 또 다른 구가 여러 번 중첩되어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유동적이고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학생 시절 종이 작업을 통해 관심 가지게 된 위상학의 주제를 짧은 철막대가 계속해 연결되는 선형 구조로 확대해 나간다. 〈Other Voices〉(1982) 또한 구멍이 뚫린 개방적 구조를 보여주는데, "과거와 미래, 신화와 현실이 어우러지는 존재와 허구 사이의 이상적 공간"을 상상하며 작가가 한국과 동아시아 문화로부터 받은 무의식적 영향을 되돌아본다.
2층 전시장에서는 존 배의 최근작을 만나 볼 수 있다. 〈Weigh of the Way〉(1996)는 신앙심 깊은 가족 배경으로부터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대립을 표현한 작업 중 하나인데, 제목의 'weigh'와 'way'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으로 아시아 철학, 특히 불교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을 반영한다. 도('the way')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방식과 믿음을 추구할 때 항상 대가가 따라온다는 존 배의 철학을 담았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작업인 〈Shared Destinies〉(2014)는 선 하나하나가 모여 형성된 구 형상으로, 이 구 형상의 그물망은 외부가 곧 내부, 내부가 곧 외부가 되는 구조를 띤다. 음과 음으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선율을 보여주는 음악 같이,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앞선 철사와 뒤에 붙을 철사를 운명적으로 연결하는 존 배의 작업 방식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존 배의 예술적 여정은 놀라운 진화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기억과 잠재의식, 미술뿐 아니라 음악, 과학, 동양 철학 및 문학을 횡단하는 학제 간의 탐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특히 음악과 다양한 스포츠, 발레, 현대 무용 등에 대한 관심은 그에게 공간 속 움직임에 대한 직관과 감각을 일깨우는 영감으로 작동한다. 이번 존 배의 개인전에서 마치 연주되고 있는 음악 같은 작품들을 바라보며, 살아 있는 듯한 작품의 생명력을 경험할 것이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