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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 속의 움직임

신소장품전 <정・중・동> 소마미술관 | 2024년 01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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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동(靜中動)은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과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을 동시에 유지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정중동은 한국 문화에 있어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정돈하고 조화롭게 유지하며 그를 둘러싼 세계와 균형을 이루는 데 가치를 부여한다. 예술 작품은 그것을 창작하는 작가 자신과 그가 몸담아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며, 그렇게 나타난 다양한 요소들이 작품 안에서 서로 어울리고 때로 충돌하는 가운데 스스로 완결성을 이룸으로써 가치를 갖는다. 소마미술관의 신소장품전 <정・중・동>은 작품 속에 나타나는 상반된 두 가지 개념인 고요와 움직임이 서로 어울리며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조망하고자 기획되었다.

고요함 속의 움직임과 같이 서로 다르거나 심지어 논리적으로 존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감정이나 의미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에 동시에 표현되는 것을 양가성이라 부른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긍정과 부정, 존재와 부재와 같이 쌍을 이루는 개념들은 홀로 존재할 때보다 함께 나타날 때 더욱 아름답다. 루벤스의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감동과 공감을 넘어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가 거기에서 온다. 인간은 과학과 논리를 넘어 스스로 인간성을 성취하기 위해 예술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정・중・동>은 몸을 매개로 예술과 삶을 바라보는 소마미술관의 기조에 따라 몸과 인물,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자연과 풍경을 다룬다. 제1 전시실은 김태의 인물화와 이만익의 초기 드로잉, 그리고 류인의 조각 작품으로 구성된다. 김태의 누드와 인물화들은 그가 천착한 구상화의 근간을 이루는 특유의 묘사력과 치밀한 구성력의 원천을 보여주며, 또한 작업에 헌신하는 작가로서 구도자적 마음가짐이 드러난다. 이만익의 초기 드로잉은 젊은 작가의 확신에 찬 필력을 유감없이 드러냄과 동시에 그가 살아나간 시대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류인의 1984년 작 <파란 1>은 빼어난 동세를 품은 묘사적 인체가 상상적 공간과 관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제2 전시실은 이만익 작가가 서울올림픽의 개폐회식을 기념하여 제작한 특별 시리즈가 전시된다. 이만익 작가는 서울올림픽 미술감독으로 헌신한 바 있다. 20점으로 구성된 연작에는 축제의 주인으로서 세계인을 반기는 설렘,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기쁨, 고난을 극복하는 강한 의지, 역경을 탈출하는 성실한 노력, 다가올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 다름을 포용하는 정감 어린 화합, 그리고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강복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한 편의 설화와 같이 구성된 연작은 한국인이 공유하는 의식과 정서, 세계관을 명약관화하게 표현한다. 이렇게 확장된 한국인의 정체성은 세계로 열린 인류 화합의 자리에서 그 존재를 확고히 드러냈다.

제4 전시실은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신체와 의식, 자연과 풍경을 다룬다. 전윤정 작가는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는 자연 현상들을 노동 집약적 과정을 거치며 추상화한다. 정헌조 작가는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서로 상대되는 개념과 행위를 병치하고 반복하며 사색한다. 하태범 작가는 매스미디어가 전하는 고통의 스펙터클을 소비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표백된 흰색의 사진 작품을 통해 재현한다. 김병호 작가는 극단적으로 가공된 물질을 제시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질서와 논리를 구현한다. 강경구 작가는 특정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실존적 인간의 모습을 과감한 필치로 그려낸다. 지희킴 작가는 신체에 얽힌 관념과 신화를 파편화하고 재배열 함으로써 그 의미를 유동화시킨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김태의 풍경화들은 그가 확립한 그만의 양식을 통해 표현된 것들로 일가를 이룬 치밀한 표현과 구성 이외에도 그의 회화에의 부단한 도전과 성취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하여 준다.

반복과 변화는 개별의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나가는 지혜로운 방법일지 모른다. 하나의 예술 작품은 스스로 완결성을 갖기 위해 창작자의 반복되는 수련을 통한 기술의 습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또한 부단히 새로워야 하는 변화를 동시에 요구받는다. 한국 문화에서 말하는 정중동은 개인이 스스로 존재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양분되는 두 가지 의미들을 자신의 마음에 새기고 조화를 유지하여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이러한 가치는 움직이는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반대로 서 있는 사람이 움직이는 이를 이해하는, 서로가 서로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함께 기뻐하는 미덕을 알게 하여 준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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