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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과 소멸이라는 생명의 숙명적 운동을 담는다

이정아 작가 | 2020년 10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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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장미, 제비꽃 더 나아가 어리연, 절굿대, 금잔화까지. 세상에는 이렇듯 수많은 꽃의 이름이 있다. 그렇다면 그 이름은 대체 누가 붙인 걸까. 아마도 꽃을 사랑하는 식물학자일 것이다. 그들은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숨어있던 꽃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여 주고 불러주었을 것이다. 덕분에 이 꽃들은 비로소 진정한 꽃이 됐을 것이며, 우리는 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서양화가 이정아 작가의 예술세계도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숨겨져 있던 생명을 발견하고 이름 붙여 주며 그들 각자의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정아 작가를 만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정아 작가는 현재 단국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서양화 박사과정 중이다. 그녀는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3일까지 초대전 <살아있는 빛의 시간>을 갤러리 내일에서 성황리에 마쳤다. 이정아 작가의 18번째 개인전이었던 이 전시의 작품들은 금속판을 활용해 그 자체로 완벽하게 2차원적 평면을 구현하는 동시에 거울과 같은 3차원의 잠재적 투시 공간을 갖췄다. 부분적으로 그라인더나 샌딩머신 등으로 미세하게 긁어낸 금속판의 표면에서 빛의 홀로그램 효과도 떠올랐는데, 이는 화면을 4차원의 공간으로 확장하며 호평받았다. 이를 비롯해 이정아 작가는 성남아트페어, 서울아트쇼, 화랑미술제, 미국 뉴욕 및 벨기에 브뤼셀 어포더블 아트페어, 프랑스 칸 아트페어, 싱가포르 아트페어 등에 참가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으며, 제36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제13회 국제종합예술대전 대상, 2018 도쿄 국제공모전 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현재 그녀는 한국미술협회, 서울미술협회, 성남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계의 혼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돈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여 얻은 제 결론은 결국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어떤 명확한 해답이 아닌 여정 그 자체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꽃의 이름을 불러주고, 까만 밤하늘 빛나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그들 각자의 자리를 알려주듯이 제가 생각하는 예술도 숨겨져 있던 생명을 발견하고 이름 붙여 주며 그들 각자의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 죽는 그 순간까지 생성과 소멸이라는 모든 생명의 숙명적 운동을 성실하게 담아내는 것. 저의 예술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이정아 작가는 그리고자 하는 풍경을 몽상으로 꿈꾸는 시간을 대신하여 방호복과 방독면으로 무장하고 그라인더와 샌딩머신 등의 장비를 갖추고 금속평판과 대면하여 보석을 채굴하듯 거칠지만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을 수행하여 빛나는 결과물을 얻는다. 그렇게 얻어진 풍경들은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작가의 의식을 떠돌다 일거에 금속판의 표면 위에 정착되어 구체화 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작업시간은 그녀가 겪어온 모든 시간의 층위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함축적인 시간이다. 이를 위해 이정아 작가는 자신이 포착하고자 맴돌던 의지 속에 움터온 여러 층위의 이미지들을 한순간에 재배열하여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세계의 혼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돈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비정형인 상태로 작가의 의식을 떠돌던 이미지는 구체적인 색과 형의 모습을 갖추고 외부로 나타난다.

하남 스타필드 작은미술관 개인전 개최
이렇게 하나씩 이정아 작가에게 소환되는 새로운 풍경들에는 멀리 꿈속에서처럼 알 듯 말 듯 우리의 의식과 영혼을 빨아들일 것 같은 늪지대의 혼령처럼 서 있는 나무들 위로 내리치는 번개와 천둥 그리고 문득 번쩍이는 빛의 다발들이 있다. 빛들은 색채의 풍경으로 가득 채워진 세계를 비집고 여기저기서 새어 나와 광채를 발한다. 이는 혼돈의 세계에서 문득 솟아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빛이다. “화면을 뚫고 새어 나오는 빛은 자체의 힘에 의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그것은 어둠이나 혼돈을 헤치고 밖으로 향하는 내적인 힘입니다. 그 힘, 또는 빛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저 자신의 내면이자 질료가 간직하고 있는 숨겨지고 잊힌 힘일 듯합니다.” 그러한 빛은 안으로부터 새어 나와 밖으로 점점 환하게 퍼져가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 무엇이란 바로 작업을 통해 이정아 작가가 살고자 애쓰는 살아있는 빛의 시간이 아닐까. 이러한 그녀의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전이 이달 23일부터 내달 5일까지 하남 스타필드 작은미술관에서 열린다. 이곳에서 만나게 될 신랄한 섬광과도 같은 살아있는 빛의 시간을 기대해본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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