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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대하소설 10부작으로 대한민국 근대사를 다시 읽는다

한상희 작가 | 2020년 01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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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음악가 차이코프스키는 원래 아버지의 강요로 그 나라 최고의 법대를 졸업했었다. 그러나 그는 음악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한 나머지 다시 음대에 재입학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그가 타고난 끼대로 살지 않았더라면, 세계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국내에도 그에 못지않은 끼를 발산하고 있는 작가가 한 명 있다는 걸 최근 알게 되었다. 그는 작가 생활 7년 만에 최소 350쪽 이상의 두터운 저서를 무려 20권(문화예술 서적 4권, 장편 소설 16권)이나 집필했다고 한다. 그게 과연 가능한 것일까? 기자는 그 궁금증을 도저히 못 참아 물어물어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 현재 군산에 임시 거주하고 있다는 그를 찾아 나섰다.

한상희 작가는 전남 담양 출신이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서양미술사학자의 꿈을 꾸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학문에 열중하다 직장사정 관계로 부득불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는 재외공관 근무를 포함한 30년간의 중앙부처 공직생활을 부이사관(3급)으로 마감하고 3년간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직도 마친 후, 참을 수 없는 문학·예술 혼을 불태우고자 숙원이던 작가세계로 전향했다. 대표 저서로는 『겨울날의 환상 속에서』, 『영화와 문화는 동반자』, 『흑해의 진주』, 『흰 스카프 소녀』, 『그을린 풍차』, 『그을린 후손』, 『순사(殉死)』, 『눈꽃 질 무렵』, 『검사의 순정』, 『추상』 등이 있으며, 군산세관 내 인문학창고 정담(주관: 군산대학교 인문산학협력센터)에서 ‘차이코프스키와 세 여인’이라는 주제로 인문학 강연도 했었다. 그에 앞서 소설가 황석영 씨와 은희경 씨도 강연했었다.   

이코노미뷰(이하 ‘이’): 언제부터 작가 세계에 뛰어든 겁니까?
한상희 작가(이하 ‘한’): 첫 작품 『겨울날의 환상 속에서』가 나오던 2012년 12월로 기억합니다.  
이: 7년 만에 20권을 집필하셨다는 말씀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데, 그 전부터 작가 준비를 해왔던 것입니까?
한: 그건 아니고, 어려서부터 문학·예술 등에 미쳐 살아왔지만, 제게 주어진 여건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 꿈을 펼쳐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공직과 연구위원직에서 각각 물러난 후,
무모하지만 지금이라도 작가 세계에 한번 과감히 뛰어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대하소설은 총 몇 부작입니까?
한: 10부작을 구상중입니다. 현재 3부작까지 탈고했는데, 이걸 먼저 발표한 후 반응을 보아가면서 4부작 집필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이: 대하소설 집필은 언제부터 착수하신 겁니까?
한: 정확히 2019년 7월 말부터입니다.
이: 구상 중인 대하소설을 소개해줄 수 있습니까?
한: 1~3부작에서는 전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전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박헌영은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경제력으로 볼 때 그럴 때도 됐다고 봅니다. 1~3부작에서는 박헌영이 중심인물로 처리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 폭동과 여순사건, 좌우익에 의한 무고한 양민학살, 그리고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져 왔던 박정희의 남로당 가입 경위와 동료들 밀고과정 등이 새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간 여순사건 때 반란 주동자가 14연대 소속 지창수 상사 등으로만 알려져 왔는데, 이는 사실과 많이 다릅니다. 백선엽 장군도 여순사건은 북로당이나 남로당 중앙당이 조장하지 않았고, 남부군의 이현상과도 관련 없다고 지적했었습니다. 그럼 과연 주동자는 누구였을까요? 새롭게 밝혀진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그 당시 박정희가 14연대 소속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건 다음날 국방부 고위관리수행을 맡아 현장에서 교묘히 빠져나갑니다. 그러다가 2주 뒤 광주에서 반란진압 설명자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 후 불리한 자신의 군 기록을 모두 없애거나 조작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의 군 행적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대하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주인공의 가슴 아린 사랑 얘기이지요. 박헌영의 생애에 세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 여인들이 바로 주세죽, 현 엘리스(현미옥)와 윤레나입니다. 저는 특히 박헌영과 현 엘리스간의 비련(悲戀)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리고 박헌영은 학창시절부터 영시(英詩) 등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진 문학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해방 후 그 꿈 실현 일환으로 시인 임화를 시켜 사회주의 문학이자 항일의 토대였던 카프문학 부활을 적극 시도했는데, 이 과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임화는 한 때 폐병으로 마산에 요양 갔다가 지극정성 간호한 소설가 지하련과 재혼한 후, 박헌영 월북 때 함께 따라가지만, 종국에는 김일성에게 처형당하고 맙니다. 이 당시 만주지역으로 피난 가 있던 지하련은 남편이 김일성에게 처형당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치마끈 매는 것도 잊은 채 맨발로 평양까지 달려가 시신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정신없이 헤맸지만 못 찾고, 결국에는 자신도 머리카락 풀어해 친 미친 상태로 죽고 맙니다.
그 후 남북 어디에서도 그들은 새까맣게 잊혀 져 갔는데, 여기서도 우리의 냉혹한 민족적 비극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지금까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좌우 이념대립        결과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편, 조선 3대 천재 작가 중 한 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소설가 채만식은 친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구천을 맴돌고 있습니다. 박헌영은 카프문학 부활 일환으로 임화에게 반드시 채만식과 노천명만은 설득시키라고 신신당부 했었습니다. 저는 채만식 작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오면서 그가 왜 친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져 왔었습니다. 그래서 대하소설 착수에 앞서 군산으로 내려왔던 것이고⋯⋯ 그가 친일(親日)한 것은 분명 맞지만,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1919년 4월 4일 임피 만세사건 때 일경에 잡혀가 8개월 옥살이까지 한 사람 입니다. 그리고 1948년 자신의 친일을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민족의 죄인>이라는 중편소설까지 발표한 양심적인 작가이기도 합니다. 해방 후,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자신의 친일행적을 변명하느라 급급했지, 어느 누가 채만식 작가처럼 자신의 친일행적을 공개 사과한 적이 있습니까? 이번 대하에서 그가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인가에 대해 세세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이: 작가님은 그간 1인 출판사를 차려 자신의 저서 출간만 고집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하소설도 그렇게 하실 겁니까?
한: 만약 대형출판사 등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적극 검토할 용의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영화화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의 비극사(悲劇史)를 알고 미래지향적인 전국적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 책이 거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렵니다.
이: 작가님의 향후 계획은?
한: 아직도 써야 할 소재는 많지만, 이젠 건강이 허락된다는 전제하에 때가 되면 우선적으로 문화·예술 전문 서적 집필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 반드시 자전적 소설
(自傳的 小說)만은 끝내야 하고요.

인터뷰 도중, 한상희 작가가 대하소설 집필에 착수한 것은 우리 모두가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민족적 화해 합의점이 과연 무언가에 대해 냉정히 고찰해보고자 하는 작가 고유의 사명감 때문이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또 하나 다방면에서 전문가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지성인 느낌도 받았다. 먼저 출간될 그의 대하소설 1~3부작에서 그간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근대사의 충격적인 비공개 사건들을 맞닥뜨리기를 기대해본다. 벌써부터 대망인 그의 대하소설 출간 일자가 기다려진다. 본 기자는 그 외에도 미술, 음악, 영화분야 등 많은 얘기를 나눈 후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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