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큰 반전을 주는 도시는 나폴리(Napoli)다. 유럽이라는 선진대륙, 말 그대로 유럽의 발전된 모습을 기대를 하고 온 여행자들에게 나폴리는 적지 않게 충격을 주는 어지러움이 있는 도시이면서도, 그 악명에 지레 겁을 먹고 별 기대 없이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방문자들을 단번에 사로잡아 버리는 도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안가의 풍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중해 남부 도시의 이상적인 모습이며, 언덕에서 바라보는 나폴리의 시가지의 모습도 그들의 생명력 있는 역사를 닮고 있기에 아름답다. 나폴리에서 조금만 배를 타고 나가면 여행자라면 누구나 인생에 한번은 방문하고 싶은 섬 카프리가 있고, 수많은 이탈리아 영화의 배경이 되어 온 프로치타 섬 그리고 온천 섬으로 유명한 이스키아 섬도 한 시간 내로 갈수 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절경인 아말피 해안도로도 나폴리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며 잔인한 화산폭발로 로마의 소도시들을 완전히 파괴한 베수비오 화산도 나폴리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이 잔인한 화산폭발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름답게 로마의 아름다움을 보전해주고 있다. 음식은 또 어떠한가? 이탈리아의 음식은 남부의 음식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피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것은 밀가루, 물, 효모, 소금 그리고 열정이면 된다. 열정적인 나폴리의 피자장인 핏자욜로가 구워내는 피자는 왜 이곳이 피자의 도시인지를 스스로 말하고 있다. 음식이면 음식, 역사면 역사, 음악이면 음악, 풍경이면 풍경. 유럽의 어떤 도시와도 겨루어도 상대를 압도하는 이 나폴리의 아름다움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나폴리가 아름다운 이유를 지금부터 말하고자 한다. 나폴리의 식당에서 메뉴판을 펼친다. 대부분의 식당에는 Pizza Sospesa라는 메뉴가 있다. 특이한 것은 이 메뉴에는 가격이 없다. 피자뿐만 아니라 cafe sospesa라는 메뉴로 다양한 음식에 sospesa라는 메뉴가 붙어 있다. 과연 이 소스페사 메뉴는 무엇일까? 엘레나 코스튜코비치라는 러시아 여행 작가의 경험담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번역하여 유명세를 떨쳤고 이탈리아인들의 식문화를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음식기행을 펼쳐내면서 명성을 얻은 이 작가는 어느 날 나폴리의 마을 카페를 찾는다. 시끌벅적한 전형적인 아침 카페에서 작은 테이블에 자릴 잡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중년의 남성 두 명이 세잔의 커피 값을 지불하고 한잔은 소스페조(sospeso)라고 말한 후 두 잔의 커피만 마시고 나가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네 명의 여성이 카페로 들어와 네 잔이 아닌 다섯 잔의 커피를 주문하고 네 잔만 마시고 한잔은 소스페조라며 나가는 모습을 본 이 작가는 이 상황이 궁금하여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소스페조 커피가 무엇이오?' 그러자 카페 주인은 바로 답을 주지 않고 잠깐 기다려 보라는 말과 함께 다른 이의 커피 주문을 받았다. 곧 이 여류 작가는 카페 주인이 정답을 말해주기 전에 이 소스페조 커피에 대한 의문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잠시 후 한 걸인의 행색을 한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여기 나를 위한 커피가 있소?' 라고 묻자 카페 주인장은 si!(네) 라는 말과 함께 흔쾌히 커피 한잔을 내어주는 것이었다. 이 나폴리의 전통적인 문화 소스페조는 보통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가난한 이들이 커피를 마시지 못해 이 아름다운 나폴리의 아침을 행복하게 맞이하지 못할까봐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커피 한잔을 대접하는 보이지 않는 불특정 다수에게 베푸는 호의다. 북쪽에서 볼 수 없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남부사람들의 문화다. 여행하며 마주하는 것 중 가장 실망스러운 것도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추억의 중심에도 사람이 있다. 결국에는 사람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오랜 시간 빚어 놓은 문화와 예술을 감상하며 라면보다 맛있는 파스타가 없다는 현실 속에서도 그들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싫으면 그냥 동남아의 휴양지에 누워있는 것이 최고다. 이 따뜻한 남부 사람들의 열정으로 시끌벅적한 나폴리의 거리를 걸을 용기 있는 여행자에게 이 도시는 가장 사람 냄새나는 정과 인간미를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처음의 그 어지러움은 사라지고 유쾌한 이곳 사람들이 내어놓는 그 무엇으로 인해 남부의 커피향보다 더 진한 아쉬움을 안고 이곳을 떠날 것이다.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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