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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전통의 명작

호림아트센터 | 2014년 12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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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은 토기, 도자기, 회화 및 전적류, 금속공예품 등 1만 5천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도심 속 예술 공간이다. 이 가운데 58점의 유물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국내외에서 소장품의 다양성과 질적인 면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호림박물관은 호림 윤장섭 선생이 출연한 유물과 기금을 토대로 민족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윤장섭 선생은 1981년 7월 재단법인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이어서 1982년 10월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호림박물관을 개관했다.

그 후 1996년 3월에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박물관을 확장·신축하여 1999년 5월에 재개관하였다. 호림박물관 신림본관은 연면적 4,627㎡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에 4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야외전시장, 수장고, 세미나실, 자료실 그리고 커피숍, 선물코너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2009년 6월에는 관악구 신림동의 신림본관에 이어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강남구 신사동 호림아트센터 내에 신사분관을 열었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은 우리나라 고미술품 전시를 위한 2, 3, 4층의 전시실과 Museum Shop, 휴게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자기와 빗살무늬토기를 모티프로 한 건축물 역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으며, 현대문화의 중심지에서 전통문화가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다.

12월, 호림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움직이는 글자, 조선을 움직이다>는 호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금속활자로 인쇄한 전적과 문방사우를 중심으로 준비한 기획특별전이다. 우리나라는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평가받는 ‘직지(直指)’를 비롯해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제작하여 사용한 나라로 예로부터 인쇄술의 강국이었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활자 제작뿐만 아니라 조판기술, 제지기술, 금속활자에 적합한 먹의 제작 등 인쇄에 필요한 기술이 집약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이다.
호림박물관에서는 국가의 통치 이념을 전파하고, 임진왜란 이후 문화를 부흥시키는데 금속활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던 조선시대에 초점을 맞추어 조선의 뛰어난 인쇄술과 금속활자본에 깃든 국가 통치 이념에 대해 새롭게 조명했다. 

책으로 기틀을 세우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의 새로운 이념으로 내세워 건국한 국가다. 왕조가 교체될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사회적 혼란을 조선 역시 겪을 수밖에 없었으며, 조선은 이러한 문제를 서적의 보급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즉 통치 이념을 담은 서적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새로운 국가로 백성을 포용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 특히 조선왕조 개창의 주역이었던 정도전은 서적포를 설치해 금속활자 인쇄를 제안했으며, 1403년 태종대 때 이를 실현했다. 태종은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주자소를 설치하여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를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금속활자 인쇄술은 세종대 때 정착되었으며 세종은 인출량과 품질을 대폭 개선한 ‘경자자’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서체의 아름다움 덕분에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6번이나 다시 만들어진 ‘갑인자’ 역시 세종대에 처음 제작되었고 이는 금속활자 인쇄술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진양대군의 서체를 바탕으로 제작한 ‘병진자’는 세계 최초의 납활자로써 역사적 가치가 높다.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모든 분야에 걸쳐 조선에 큰 손실을 입힌 전란으로 서적의 손실 역시 막대했다. 화재에 의한 손실 못지않게 일본으로 약탈된 수도 많았으며 금속활자와 활판 등의 인쇄도구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금속활자 인쇄 문화는 임진왜란 이후 한동안 중단될 수밖에 없었으며 금속활자를 다시 복구한 것은 광해군이었다. 광해군은 주자도감(鑄字都監)을 설치하여 금속활자 전성기를 다시 재현했다. 이 때 제작된 활자는 갑인자 계열의 ‘무오자(戊午字)’이다. 그러나 전란 직후의 정치 ·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크게 번성하지는 못했다. 
광해군 이후 숙종대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元宗, 1580-1693)이 쓴 글자를 바탕으로 ‘원종자(元宗字)’를 제작하였다. 원종자는 활자의 주조가 정교하여 원종의 예리한 서체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안에 포함된 한글 활자도 인서체에서 필서체의 구성으로 바뀌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활자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정조대에는 주자소(鑄字所)를 복원하여 ‘정유자(丁酉字)’ · ‘임인자(壬寅字)’ · ‘정리자(整理字)’ 등을 각각 수십만 개의 활자로 제작하였고 규장각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출판 사업을 시행하였다. 이는 문(文)을 숭상하는 우문정치(右文政治)를 표방한 정조의 의지가 담긴 국가사업으로 볼 수 있다.
세종대 때 정착된 금속활자 기술은 세조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세조는 당대 명필가였던 강희안(姜希顔, 1417-1464)과 정난종(鄭蘭宗, 1433-1489)의 서체를 바탕으로 각각 ‘을해자(乙亥字)’와 ‘을유자(乙酉字)’를 제작하게 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글자를 쓴 ‘정축자(丁丑字)’도 제작하였다. 이후의 여러 왕들도 금속활자 제작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이로 인해 조선 전기는 금속활자 인쇄술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로 인쇄한 전적(典籍)들을 크게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_책으로 기틀을 세우다’와 ‘조선 후기의 금속활자_책으로 문화를 부흥시키다’로 구분하여 선보인다. 더불어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국가의 주축인 사대부들이 책과 함께 애호하였던 문방사우와 학문을 할 때의 자세나 유교적인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사랑방에 펼쳐놓았던 책가도 등의 회화 작품도 함께 전시했다. 
이번 전시는 조선왕조 전 시대에 걸쳐 인쇄된 금속활자본을 총망라하는 이번 전시는 금속활자본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조선의 역사와 서체의 아름다운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호림박물관 소장 <명품 도자>전 
제3전시실은 호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도자기 중에서 국보 2점, 보물 11점 등 명품을 선정하여 전시하고 있다. 조선 백자 중에서는 <백자주자>(국보 281호)와 <백자반합>(보물 806호)이 주목된다. 어느 곳 하나 흠잡을 곳 없는 단정한 기형에 눈처럼 하얀 유색이 압권인 이 작품들은 조선 백자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청자 중에서는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보물 1451호)와 <청자음각연화문팔각장경병>(보물 1454호)가 눈에 띈다. 두 작품 모두 섬세한 기형에 화려하면서도 절제 있는 문양과 청초한 유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고려 귀족사회의 미의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분청사기 중에서는 <분청사기박지연어문편병>(국보 179호)이 눈길을 끈다. 풍만한 몸통을 지닌 이 작품을 바라보면 한 여름날 연꽃이 활짝 핀 연못을 그린 한 폭의 서정적인 회화 작품을 보고 있는 듯하다. 기형과 색 모두 깊고 그윽한 맛을 느끼게 해주어 조선 초기 박지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절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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