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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예계 거목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으로 서도(書道)에 정진

라석 현민식(羅石 玄玟植) 서예가 | 2014년 09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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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대표하는 예술인으로서 한평생 지·필·묵을 벗해온 라석 현민식 선생. 그는 정통필법을 바탕으로 서도(書道)에 정진해온 국내 서단의 원로작가다. 라석선생은 60여 년간 법첩을 통해 전통서체를 두루 섭렵하고, 옛 성현들의 지혜와 철학을 담아 국내외적으로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아왔다. 이에 본지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기운생동(氣韻生動)한 작품세계를 펼치는 라석선생을 만나 묵향을 오롯이 드리운 고귀한 예술인의 삶을 조명해 보았다. 

제주의 향취 배인 예인과의 만남 
탐라국의 역사가 깃든 제주특별자치도에는 한국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며, 자긍심을 갖고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많다. 그 중심에서 격조 높은 창작활동을 펼치며, 지역 문화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라석 현민식 서예가를 주목할 수 있다. 라석선생은 한국의 대표 서예가이자, 수필집 ‘청일원의 달빛’을 출간한 중진수필가이며, 서화가로서,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에 빛나는 위대한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다. 한국 예술계의 ‘어른’으로 추대 받는 그를 만나기 위해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서실을 찾았다. 제주 한란의 향취를 지니고, 부드러운 미소로 반기는 그는 팔순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고, 만면에 성실과 겸덕의 고매한 인품이 배어있었다. 
“부친의 영향으로 6세 때 서당을 다니면서 붓을 잡았고, 지금에 이르렀으니 먹과 함께 한 세월이 70여 년이 지났네요.”
일생동안 붓과 동행하며, 서도에 집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강인한 집념과 확고한 의지, 그리고 예술을 향한 충만한 사랑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국 문화예술의 위상을 드높인 다양한 업적  
라석선생이 국내외적으로 이룩한 업적은 상당하다. 그의 예술적 삶은 한국 문화예술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 교류 강화에 기여했다. 특히, 라석선생의 서예자료 발간 성과 중 해서 기본서인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九成宮禮泉銘)’은 1983년, 1988년, 2000년 등 총 3회에 걸쳐 출간했으며, 국내 유일하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더불어 1992년 『라석한글서예』를, 1993년에는 『서예·한자 동시학습교본』 을 출간했다. 이어 2005년에는 『라석 현민식 해서천자문』을 펴냈다. 그 외로 손과정 서보, 천자문 행서, 천자문 초서를 임서해 문하생들이 복사본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후학양성에 주력해온 라석선생은 1983년부터 현재까지 30여 년간 가르친 제자들이 5,000여 명이 넘는다. 라석선생의 문하생으로 모인 동호회 ‘상묵회’는 1984년 3월에 창립돼 지금껏 30여회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동호회 활동을 통해 중견 작가들이 많이 배출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르침을 전할 때, 서예 기본에 충실히 하며 중봉 필법을 철저히 익히도록 한다”고 강조하는 라석선생은 항상 제자들에게 체본을 써주고, 보면서 쓰는 연습을 시킨다. 이는 체본쓰는 것을 직접 보면서 집필법과 운필요령을 익히게 함이다. 이뿐 아니라, 라석선생은 서예의 본고장 중국에서 최고로 인정받은 서예가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2010년 8월, 중국 산둥성 태안시에서 개최한 한·중 미술교류전에서 국내 작가의 작품 서양화 40여점, 동양화 40여점, 서예 20여점 등 100여 개 중 라석선생의 행서작품이 한국의 대표작품으로 선정됐다. 이후 중국 예술계 권위지인 ‘희지서화보(羲之書畵報)’ 1면 전면과 5면 전면에 라석선생의 작품 20여 점이 집중 조명되면서 중국서단으로부터 최상위로 평가받은 바 있다. 이는 라석선생 본인도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으로 여기고 있었다. 

운명처럼 서예가의 길을 걷다 
라석선생은 1933년생으로 제주도 출신이다. 유년 시절 부친의 영향으로 붓글씨를 배우면서, 자연스레 묵향에 젖어들었다고 회고했다. 제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0년간 교직에 몸담았다가 4.19혁명 이후 서예가의 길로 전향했다. 초기 라석선생은 부산에 터를 잡고, 사군자에 집중하며 각종 서예 관련 책을 구입해 탐구했다. “정확한 필법을 익히기 위해 남보다 두세 배는 열심히 노력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그는 꾸준한 연습만이 정도임을 잊지 않고, 매일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다리가 퉁퉁 붓도록 임서에 매진했다. 당시 상대방이랑 대화를 나눌 때에도 붓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글을 쓸 정도로 글쓰기 매력에 심취해 있었다. 
서예의 기본을 학문에 두었던 라석선생은 늘 법첩을 가까이하며, 서법을 연구해왔다. 그는 모든 서체에 능통하지만 특히 온화하면서도 활기찬 행서체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라석선생의 작품은 웅혼(雄渾)하다. 백색 화선지에 먹빛 농담의 맑은 기운을 띠고 있으며, 호방하면서도 풍윤한 생명력을 한껏 뿜어낸다. 또한, 근작에서는 스토리가 담긴 서화작품을 다양하게 선보이며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1982년 제1회 라석 서화전을 제주시 칼호텔에서 개최해 제주작가 최초 서예, 사군자, 화조화 등의 작품을 다양하게 선보여 이색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서귀포 동명다방(1982), 제주시 한국투자신탁 전시관(1986)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회갑기념전, 고희기념전에 이어 ‘낭만과 추억이 있는 서화전’을 주제로 제주도문예회관에서 희수전을 연 바 있다. 지난 2012년에는 팔순을 기념해 ‘법고창신 60년, 라석 현민식 서화전’을 개최해 호평을 받았다. 그는 총 6회의 개인전 뿐 아니라 다수의 국제전 및 초대전, 그리고 30여회의 국제교류전에 참가했다. 더불어 교육부장관표창, 탐라문화상, 대한민국설송문화상, 베이징올림픽특별상, 국제미술문화상 등 다수의 수상 영예를 안은 바 있다.   

“전통에 기반을 두고 창조적 모색을 시도해야” 
동양예술은 전고(典故)를 통한 창조라는 말이 있듯, 라석선생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서예가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성을 추구하려고 전통을 경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하며, “옛 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예술혼을 살려 선비의 올곧은 정신으로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석선생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씨를 쓰는 이나, 보는 이나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 점과 획이 제자리를 얻으면 조화롭고, 점과 획이 생명력을 얻으면 운치와 호소력이 있어 유현(幽玄)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서예가는 한 유파에 고정되지 말고, 옛 대가들의 서체를 두루 섭렵해야 하며, 그 장점을 집대성해 독자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라석선생은 “서예는 짧은 문장이라도 그 안에 철학이 담겨있고, 윤리와 도덕의식이 배어 있으며, 토론의 장을 열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라석선생은 현 침체된 서예계의 활성화를 위해 양적팽창에만 집착하지 말고, 질적으로 수준을 높여, 한국 서예 위상 강화와 더불어 사회 질서 확립에 기여하길 바랐다. 특히, 그는 ‘홍익인간’ 이념 구현에 뜻을 품고, 전국 방방곡곡에 그의 작품이 걸려 수양의 원천이 되도록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구차히 구하지 않고, 구차히 얻지도 않는다는 뜻의 ‘不苟求  不苟得’ 을 생활신조로 가슴에 새기고, 세속에 영합하지 않고, 정도를 지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걸어왔습니다. 훗날 속되지 않고, 서예의 정도를 열심히 걸었던 서예가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매사에 진실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며 뜨거운 열정으로 서도에 매진하는 라석 현민식 선생. 그는 시류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고유한 예술세계에 천착하며 먹의 감동을 전파하고 있었다. 그의 심혼이 담긴 작품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더해 후세에 값진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국내 서예계의 활성화를 선도하는 중핵으로서, 모쪼록 건강을 유지해 찬란한 작품세계를 펼쳐나가길 바란다. 오늘도 라석 현민식 선생은 자신의 성정(性情)이 담긴 강렬한 선질로 서예술의 정수를 향해 열정을 쏟고 있을 것이다.  정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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