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술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뛰어난 판화 작가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판화는 여전히 대중에게 다소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장르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 판화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예술적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판화'는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인쇄술의 발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그러나 판화가 본격적으로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1950~60년대부터다. 당시 미술대학에 판화과가 생기기 시작하며,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형태로 주목받았다. 판화는 기법적으로도 매우 다양해, 볼록판화, 오목판화, 평판화, 공판화 등 각기 다른 기술과 표현 방식을 통해 풍부한 예술 세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디어의 급격한 발전과 미디어 아트, 융복합 미술 등 새로운 매체 미술이 주축을 이루면서 전통 판화는 대중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판화는 여전히 회화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닌 예술 장르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이번 전시는 판화의 세밀한 표현력과 제작 과정에 담긴 작가의 시간 등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며, 국내 원로 판화 작가부터 중견·신진 작가, 그리고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총 29명의 국내 작가와 4명의 해외 작가가 참여해, 동서양의 현대 판화를 다채롭게 선보인다.
국내 작가로는 이상욱, 김구림, 김형대, 김상구, 오윤, 이상국, 홍재연, 곽남신, 김승연, 김준권, 김억, 임영길 등 원로와 중견작가를 비롯, 현대 판화를 이끄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들 외에도 서효정, 이서미, 최혜민 등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신진 작가들의 작업이 포함된다. 해외 작가로는 알렉스 카츠, 우고 론디노네, 프랭크 스텔라,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소개되며, 판화의 개념을 다양한 매체로 확장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현대 판화의 예술적 표현미를 중심으로 주제별로 총 6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기법적 분류나 연대순이 아닌 자연, 사람과 동물, 사물 등 일상의 소재와 추상이라는 주제로 나누어져, 각 주제에 따른 작가들의 다채로운 예술적 감각을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섹션인 ‘새김의 시작’에서는 조선시대 목판 등 다량 생산 기반의 유물을 통해 판화의 기원을 조망한다. 두 번째 섹션인 ‘자연의 숨결’에서는 김승연, 이상국, 김준권 등 14명의 작가가 자연을 주제로 한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우리의 모습’ 섹션에서는 오윤, 권순왕 등 9명의 작가가 인물과 동물을 주제로 한 작품을 소개하며, ‘일상의 경계’에서는 김구림, 강승희, 배남경 등 8명의 작가가 사물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혼돈 속 질서’에서는 김형대, 김상구 등 7명의 작가가 추상적 표현에 집중한 작품을 전시한다.
마지막 섹션인 ‘개념의 무한함’에서는 판화의 개념이 기법, 재료, 매체로 확장된 작품들이 소개된다. 특히 코딩을 활용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가 주목받고 있으며, 김노암 평론가는 코딩과 판화의 유사성을 언급하며 두 분야가 패턴 생성과 복제라는 본질적인 특징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이 섹션에서는 최혜민, 서효정, 미디어아티스트 칼로스의 작품을 통해 재료의 경계를 뛰어넘는 판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