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종은은 ‘지금’ 우리 사회에 밀착한 날렵한 문체로 너무 처량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현실의 질곡을 녹여낸 소설을 쓴다. 그의 소설 여덟 편을 묶은 세 번째 소설집, 『부디 성공합시다』가 출간되었다. 『부디 성공합시다』는 자의적으로 피로를 선택한 후 열정을 배합하여 도무지 알 수 없게 된 감정으로 하루를 꾸역꾸역 밀어내는 이 시대, 소소한 불행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보통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김종은 소설 속 인물들은 붙들고 있는 것이 허상임을 짐작하면서도, 그 허상을 쥐기 위해(‘부디 성공’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모든 것을 떨어내며 소박한 각성에 도달하고, 일부는 나아가 그러한 삶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소설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거짓말투성인 현실에 비소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의 지지부진한 삶에는 공감의 실소를 짓게 될 것이다.
가면을 쓰다, “성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표제작인 「부디 성공합시다」 에는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시들해 지방 공장 강연까지도 뛰어야 하는 신세인 자기계발 강사가 등장한다. ‘누군가 옮겨 놓은 치즈 이론’에 필적할 나름의 논리를 보유한 그는 단무지 공장에서 칼 세이건의 물리학까지 들먹거리며 열강하지만 고잣 열댓 명 남짓한 청중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월 백만 원도 못 벌어다 주는 처지라 줄곧 아내는 꽃집이나 함께 운영하자며 닦달하나, 성공 신화를 꿈꾸는 그에게 아내의 말은 탐탁지 않다. 진퇴양난에 빠져 상황을 비관하는 건 다른 작품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정서든 육체든 어딘가 한 군데쯤 병든 이들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떠밀리듯 ‘뭔가’를 좆는다. 그 무엇의 자리에는 성공이나 아름다움, 윤리적 올바름 등 흔히 추앙받는 어떤 가치라도 들어갈 수 있으나 곁을 달리는 사람들 틈에 휩쓸렸을 뿐 진정 자신의 것이라 단언할 수 없다. 가치를 좆는다는 자기만족은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 붙인 얼굴 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스스로 지은 가면을 기쁘게 쓴다.
가면을 벗은 고독한 슈퍼 히어로 소설집의 분위기는 「상상과 거짓말」을 기점으로 판이하게 바뀐다. 소설집 후반부의 인물들은 비범한 삶을 살기를 선택한다. 「살구」 의 ‘소년’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각별히 예민한 감각으로 생각을 읽고 부도덕한 자들을 응징하고 처단한다. 「가면」의 ‘소년’은 다른 사람이 쓰고 있는 가면을 볼 수도, 벗길 수도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소년이 가면을 벗겨준 이들 또한 소년처럼 현실과 불화하거나 소외당하길 자처한다. 스스로 가면을 만들어 다시 쓴 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능력의 대가는 무겁고, 진실의 맛은 쓰다. 「살구」의 소년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던 죽음을 해결하러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 죽음 역시 비밀이 되는 현실을 비웃는다. 「가면」의 소년은 진실을 알아버린 것을,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을 후회하곤 한다. 진실을 알고 실천하는 두 인물의 호칭은 ‘소년’이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을 거라는 두 ‘소년’의 대책 없는 순수함과 미성숙을, 그들을 ‘낳은’ 김종은은 애정 섞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면을 쓴 자와 벗어던진 자, 진실을 외면하는 자와 바로 보는 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빽빽하게 메우는 보통 사람들이 있다. 김종은의 소설을 구성하는 것은 한 끝에서 또 다른 끝으로 서서히 움직이려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희망이 조금 촌스럽고 헛되어 보인다고 해도, 이미 수도 없이 실패를 맛보았어도, 김종은 작가는 세상과 지리멸렬한 사람들을 유쾌하게 비웃고 힘껏 사랑하는 것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김종은 작가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0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신선한 생선 사나이』 『첫사랑』, 장편소설 『서울특별시』를 출간했다. 오늘의 작가상(2003)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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