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만남, 추상으로>는 드브레의 학창 시절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의 활동 초기 작품들을 살펴본다. 올리비에 드브레는 17세에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건축 공부를 시작한 후, 현대 건축의 선구자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실을 다녔다. 건축 공부와 회화작업을 병행하던 드브레는 파블로 피카소와의 만남으로 입체주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상주의에서 파생된 구상 방식의 그림은 <풀밭 위의 소녀>(1940)의 흐릿한 얼굴과 뭉개진 윤곽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올리비에 드브레가 전쟁기에 투렌 지방에 머물며 제작한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가족이 흩어지면서 그는 혼란과 외로움을 느꼈다. 전쟁기 동안 드브레는 투렌 지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고, <풀밭 위의 소녀> 또한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또한 드브레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자행된 유대인 학살에 대한 잔혹 행위에 대한 공포심을 강제수용소의 인질과 희생자, 나치, 살인자 등의 모티프를 자신만의 독특한 상징적 기호로 나타냈다.
특히, <살인자, 죽은 자와 그의 영혼>(1946), <거울 속의 검은 추상화>(1946) 등의 작품이 그 시대를 담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장면을 추측할 수 있지만, 검은색으로 표현된 각진 형태, 날카로운 선, 음영이 잔혹함을 증언한다. 1950년대에는 사각 형태의 두꺼운 붓터치를 수직으로 배열한 <기호 인물> 연작이 등장하였고, 생의 마지막까지 드로잉과 판화로 이 연작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1부에서는 작가의 완숙한 전형이 완성되기까지의 일련의 탐색 과정을 전시한다.
2부 <심상 풍경의 구축>은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작가의 전성기 표현 방식이 확립된 시기를 조명한다. 드브레는 미국 여행 중 대형 회화 작업을 하던 마크 로스코와 만난 후 회화적 행위와 색채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미국 색면회화와 달리 투르의 루아르 강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에서 추출한 감각을 주로 작품에 재현하는 특징을 보인다. <거대한 엷은 검정>(1962), <연노랑색 기호 인물>(1965) 등에서 작가의 색 표현의 실험을 엿볼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새로운 풍경과 빛을 발견하기 위해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그중 가장 큰 영감을 준 곳을 프랑스 투르의 루아르 강변이었고 변화하는 루아르 강의 모습에서 받은 심상을 작품에 옮겼다. <폭풍우 치는 루아르강의 진보라와 흰색>(1981)은 올리비에 드브레가 투렌 지방에 위치한 레 마데르의 아틀리에 가까이에 있는 루아르강을 주제로 그린 작품이다. 그는 액체처럼 묽은 안료가 캔버스를 흐르도록 하면서 투렌의 투명한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루아르강을 보고 느낀 심상을 담아냈다. 이 작품 윗부분에 거칠게 발린 두터운 물감 덩어리는 격정적인 폭풍우에 출렁이는 검푸른 루아르강에 대한 심상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길이가 각 3m에 달하는 <루아르의 연보라>(1985), <검은 얼룩과 루아르의 황토빛 분홍>(1985-86), <루아르의 흘러내리는 황토색과 붉은 얼룩>(1987)이 있으며, 이 작품들은 별도의 ‘루아르의 방’에서 감상할 수 있다.
3부 <여행의 프리즘>은 작가가 노르웨이, 미국, 멕시코, 일본 등을 여행하며 그곳의 풍경과 정서를 내면화해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다. 1966년 노르웨이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종종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청청한 자연풍경을 담백하게 표현한 <길고 푸른 선들(스바뇌위, 노르웨이)>(1974), <겨울 슬레톨렌의 흰색 1, 2>(1988) 등을 선보인다. 드브레는 겨울에 여러 차례 노르웨이를 여행했다. 그중 1979년 옵달에서, 1988년 슬레탈렌에서 그린 하얀 회화 연작 <겨울 슬레톨렌의 흰색 1, 2>(1988)은 북유럽의 분위기를 잘 반영한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당시 드브레가 실험했던 다양한 흰색의 조합을 살펴볼 수 있다. 섬세하게 다루어진 흰색의 변화는 마치 은밀한 표시처럼 눈 덮인 언덕과 산의 실루엣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수원시립미술관 관계자는 “국내 최대규모로 선보이는 올리비에 드브레의 개인전은 자연풍경의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작가의 세계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