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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봄날처럼

<이길범: 긴 여로에서> 수원시립미술관 1 전시실 | 2024년 05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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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립미술관은 한국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조명이 부족했던 수원 작가에 대한 재평가와 연구의 일환으로 <이길범: 긴 여로에서>를 2월 27일부터 6월 9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 1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길범은 1927년 수원군 양감면에서 태어나 17세가 되던 해 산수, 화조, 인물 전 분야에 걸쳐 큰 명성을 얻었던 이당(以堂) 김은호를 만났고, 그의 문하에서 6여 년간 그림을 배웠다. 작가는 1949년 봄날의 온후한 기운을 그린 화조화 <춘난>(1949)으로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입선하며 등단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게 된다. 

제2국민병으로 소집된 작가는 대구와 제주, 부산에서 훈련 괘도(걸그림)를 그리며 복무하였고 전역 후에 대한도기(부산 영도)와 대한교육연합회에서 도안 디자인과 삽화를 그리는 생활을 지속했다. 53세가 되던 해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자신만의 공간인 작업실을 마련하며 가장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82년 수원 미술계에 첫 한국화 동인인 성묵회(城墨會)를 결성하고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장 등을 역임하며 정부표준영정 작가로 참여하며 인물화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전시는 온화하고 담백한 미감을 형성해 온 이길범의 생애와 작품을 회고하는 자리로 전 작품을 연대기 순, 나열식으로 제시하기보다 그림의 소재에 따라 ‘영모화조(새, 짐승, 꽃, 새)’, ‘인물’, ‘산수풍경’으로 구성하여 주요 대표작을 선보인다. 더불어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는 자료를 함께 전시하여 이길범의 발자취와 수원 미술사가 전개되어 온 과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된다. 

이길범이 그린 영모화조화는 인물화와 산수풍경화에 비하여 적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소재다. 작가의 1949년 등단 작품은 온후한 봄볕 아래 노니는 오리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고, 1981년 수원백화점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에 소개된 대표작도 꿩과 까치를 그린 영모화였다. 작가의 스승인 이당 김은호의 낙청헌 화숙(畵塾)의 작화 경향은 채색화풍의 화조, 인물화로 이길범이 시적 정취가 묻어나는 서정적인 작품을 전개하는 바탕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가장 이른 시기 작품인 <오수>(1948)를 시작으로 꽃과 나무, 새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길범은 영모, 화조, 인물 등 다양한 소재를 소화하며 작품세계를 구축했지만, 그의 화업의 시작은 인물채색화이다. 작가는 근대기 마지막 어진 화가였던 김은호의 화풍을 본받아 수련하는 과정을 거치며 정밀한 필치와 고아한 채색기법을 익혔다. 1988년부터 이길범은 세 차례에 걸쳐 정부표준영정 제작화가로 참여하였고, 그 중 <정조> 표준영정은 대중에게 가장 각인된 작가의 대표 인물화다. 아울러 작가는 인물과 동물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상상력이 가미된 새로운 작풍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오랜 시간 삽화가로 활약한 이길범의 독특한 구성 방식이다. 

이길범의 산수풍경화는 수원작가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장르다. 작가는 실제 풍경을 스케치와 사진으로 옮겨온 뒤 완성하거나 실제 장소의 인상적인 부분들을 재조합하고 회화화 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이길범이 가장 즐겨 그린 소재는 수원화성이다. 옅은 먹과 청색의 청량한 어우러짐이 특징인 <수원화성>(연도미상)은 현대적 감각으로 변모한 작가의 화풍이 드러나는 대표작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먹의 자연스러운 번짐과 금분을 활용하는 등 이길범 특유의 작풍이 돋보이는 산수풍경화를 만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수원시립미술관 이채영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수십 년간 수원을 기반으로 활동한 원로작가 이길범을 조명하는 자리로, 작가 특유의 온화하고 담백한 미감이 주는 정서적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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