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 원주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한 시골 마을이 있다. ‘자연 친화적인’곳이 아닌 ‘자연’ 그 자체인 이 동네 골목길 끝자락에는 예사롭지 않은 문화예술 공간이 숨어있다. 강원도 문화예술단체로 지정돼있는 ‘송계아트스튜디오’의 주인장 이영란 화백은 이곳을 창작의 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본지에서는 자연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송계아트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은 물론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는 이영란 화백을 인터뷰했다.
이영란 화백은 ‘마흔’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다. 마흔 전까지 그는 공예와 도예를 비롯한 그야말로 다양한 일에 몸담으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왔다. 그러던 중 이영란 화백의 언니가 그에게 화구를 선물해주며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강원도미술대전에 제출할 ‘연꽃’을 그릴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생애 최초로 느꼈다. 바로 그때 이영란 화백은 자신이 평생 가야 할 길은 이 길임을 깨닫고 미친 듯 미술 외길을 파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간 스무 번의 개인전과 300여 회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한 이영란 화백은 (사)치악 예술인연합 대표, 경미회 회장, 원주크로키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미술협회 정책연구원 이사, 중원미술가협회 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2022년 10월 원주문화원 전시실에서 제20회 개인전 <弄絃(농현)>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거미줄과 승무를 작품 속에 끌어들여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어디에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거대한 사회의 그물망은 흡사 거미줄 같죠. 한순간 거미줄에 걸려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며, 끊어진 거미줄을 뒤로 하고 여유롭게 날아오르는 나비를 화폭에 담아낸 것은 제 자아 속 자유에 대한 의지와 갈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영란 화백은 <농현> 개인전에서 캔버스 천에 아크릴과 패브릭 물감을 활용한 500호짜리 작품 4점과 옻칠한 한지 위에 금분자개 운모를 재료로 사용한 작품 16점을 비롯한 다양한 설치 및 유리 공예 작품 등을 선보였다. 주목할 점은 이영란 화백은 ‘거미줄 작가’로 잘 알려진 것처럼 실제 거미줄을 작품의 오브제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 최초의 시도로 그의 거미줄 사랑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제 작업실이 산자락 끝에 있는 청정지역이고 개울을 끼고 있는 까닭에 거미줄을 쉬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한밤에 거미줄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면 그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지요. 그때부터 저는 거미줄에 빠져들어서 이를 오브제로 사용할 수 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하게 됐습니다.” 이영란 화백은 이렇듯 거미줄을 오브제로 활용하면서 작품 속에 ‘승무’도 끌어들였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승무에서 장삼 자락이 날릴 때 그 모습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무엇보다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즉, 승무는 다른 차원에 갇힌 나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였고, 이영란 화백은 새벽이슬을 머금은 거미줄과 그 위에서 마치 줄을 희롱하듯 노니는 광대의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에 지난 전시회 당시에도 적지 않은 관람객은 그림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라고 감상평을 건네기도 하는 등 이영란 화백의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여운을 주며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
창작과 치유의 공간, 송계아트스튜디오
지난 2012년 오픈한 송계아트스튜디오는 문화 소외 지역인 송계리에 없어서는 안 될 문화예술 명소다. 그는 자연이 곧 예술인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곳을 창작의 공간이면서 치유의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에는 생활도예동호회 ‘플러스토’가 열한 번째 회원전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이외에도 그는 이곳에서 지역 여성들과 도예 수업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적 교류를 이어가며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향후 크로키 개인전을 구상 중인 이영란 화백이 당면한 모든 문제를 슬기롭게 마무리하고 국내를 넘어 해외로 예술 지평을 넓혀나가기를 기대해본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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