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 같은 선비적 자존심과 예술을 향한 뜨거운 집념으로 서예에 몰두해온 의당 신경자 선생. 그는 용필재심(用筆在心, 붓을 사용하는 것은 마음에 달려 있음)을 가슴에 아로새기고, 구도(求道)의 자세로 필력에 깊이를 더해왔다. 정통필법에 터잡고 30여년간 서예에 천착하며 법고창신(法鼓創新)의 정신으로 서예의 발전을 이끌어온 그의 선비적 자존심은 전남 지역은 물론, 한국 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예술혼에 새로운 기운이 깃드는 봄, 내면의 학문·예술적 달성은 물론이요, 후배들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다방면에 걸친 노력과 헌신을 마다않는 의당 선생을 찾아 묵향을 머금은 찬연한 예술철학에 흠뻑 취해보았다.
학문적 기본 위에 싹트는 예술혼 봄의 완연한 기운을 느끼며 찾아간 의당 선생의 작업실은 은은한 묵향과 더불어 전통의 아름다운 정취가 짙게 배인 곳이었다. 고즈넉이 홀로 배움 속에 파묻히기 위해 마련한 공간에서 온화한 미소로 자리를 안내하는 그는 화폭에 담긴 서체만큼이나 맑은 예술가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2009년 개인전 이후 학문적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서예는 예술이기 이전에 학문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작업실에서 조용히 이론적 깊이를 더하며 경륜을 쌓아갈 계획입니다. 아울러 변화추구를 위해 한국화에도 집중할 생각입니다. 그저 매일 탑을 쌓듯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국미협과 서가협에서 활동하며 다른 서예가들에 비해 폭넓은 활동을 보여주는 그이기에 평소 문화센터나 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곤 하지만, 스스로의 부족함을 채우는게 우선이라는 점을 겸손히 밝히는 의당 선생은 30여년간 모든 힘을 서예에 경주해왔건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그의 면모는 변화와 기교, 새로운 변화을 우선시하기보다 멀리 보며 획에 진심과 내력을 더해가는 선비에 가깝다. “서예의 기본에는 한학이 갖춰져야 한다. 이론 없는 서예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어 그는 젊은 시절 서예를 시작한 계기를 추억했다. 교직에 몸담고 있던 남편을 내조하며 힘든 속내를 다스리려 시작한 취미가 지금은 삶의 일부가 됐다. “시장에서 우연히 서예학원 간판을 봤어요. 저도 모르게 끌리듯 막내아이 손을 잡고 학원 문을 열었죠. 아마 서예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의 추억 탓에 스스럼 없이 붓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의당 선생의 외조부는 서당 훈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친모는 뛰어난 필력을 보였던 문장가였다고. 어린시절 책을 읽어주고 글을 쓰시던 어머니의 기억은 지금 그가 그토록 닮고자 노력하는 신사임당의 행적과 흡사하다. 그는 어머니를 첫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 빼어난 필력으로 사돈서(査頓書)를 대필하는가 하면, 수많은 수필과 서찰들을 남겼다고 한다. “서예를 시작하자마자 운명처럼 빠져들었어요. 당시에 여러 사정으로 심적 아픔을 겪고 있었는데요, 이를 잊고 활력을 되찾는데 서예가 큰 도움이 됐지요. 처음에는 도피처로서 서예에 몰두했던 것이 이제는 저의 본 모습이 됐습니다.” 의당 선생은 직선적이고 강직한 성품과 함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과 널리 교류하는 대장부적 기질을 갖추고 있다. 이런 성품 탓에 평소 행초서를 즐겨 쓰며 즐겁게 후배들과 함께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행초서에서는 우리 민족 특유의 풍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 흐르듯 획을 더하며 배움의 진중함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의당 선생은 지금껏 독창적인 작품으로 서예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전통 속의 현대, 현대 속의 전통을 추구하는 그의 작품을 보면 漢文의 전·예·해·행·초를 섭렵한 공력이 보이며, 한글서예도 꾸준히 연찬해 한글의 훈민정음, 고체, 민체, 흘림체까지 수준 높은 경지의 작품성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전통서예의 틀에서 현대적인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한다. 그의 서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정신과 열정은 늘 자신을 가두어 머물지 않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쉼 없이 연찬해 나가는 모습이 흩어지지 않아 그 의지가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 여기에 체계화된 이론의 바탕이 더해진다면 새로운 창작의 기틀을 마련하여 창신(創新)을 향해 뻣어나가는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서예는 마약같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획을 더하다보면 어느덧 자신을 무아의 경지에 빠져들게 하며, 붓을 잡으면 신비하면서도 충만한 기운으로 가득찬다”
“후배들 발전에 보탬이 되는 서예가이고 싶다” 의당 선생은 사회 활동에 욕심 갖기보다, 자신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 곧은 자존심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 대한민국 서예대전과 전라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에 도전하면서 비교적 늦은 시기에 국전 초대작가로서 이력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전한다. 자신부터 청렴함과 강직함을 지켜야 후배들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각종 서예·미술대전에서 경쟁하는 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속내를 비춘 시를 소개했다. “김구 선생이 인용한 바 있는 서산대사의 선시를 즐겨 읊습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마침내 후인의 길이 되리니후에 따라오는 이를 위해 곧게 나아갈 것을 강조하는 이 시의 내용이 제 생각과 같습니다. 저도 그저 작가정신과 선비로서의 자존심을 굳게 지키며 학문에 정진할 것입니다.
내세우기보다 조용히 공력을 쌓아가며 후배들에게 실력으로 인정받는 서단 문화를 물려주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노력하고 있는 의당 신경자 선생. 인터뷰 동안 보인 강한 신념과 의지를 보며 강렬한 예술혼에 버금가는 소신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직 그의 앞에 남겨진 배움의 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지금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그이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고 곧게 걸어가며 후배들을 배려하는 그에게서 한국 서단의 밝은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그의 행보에 서광이 비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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