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대표적인 단어로 모이지 않는, 어쩌면 모여서는 안 될, 다섯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벽과 단층에 주목하고 각자의 사적인 경험과 관심을 바탕으로 재언어화된다. 강나영, 얄루, 임창곤, 조이솝, 장효주는 다양한 방식과 태도로 안과 밖을 오가고 감각하며, 그 틈을 파헤치고, 사이에서 헤매거나 머뭇거리고, 질문하고 두드린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와 새롭게 여닫기 위한 제안을 담아낸다.
평소 사회적 소수자의 일상과 돌봄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입체,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강나영은, 항상 열려 있는 듯한 회전문이 기실 민첩하지 못한 노인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 등 특정한 대상에게는 오히려 굳게 닫혀 있을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 주목한다. 회전문과 의수족(義手足)에 참조점을 두고 만들어진 〈기대어 지탱하고 나아가는〉(2023)은 부드럽게 쓰다듬고 지지하는 보살핌의 제스처를 담으며, 우리 주변에 산재한 문턱과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 수많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편 조이솝의 작업에 종종 등장하는 ‘문’의 표상은 그를 가두고 동시에 해방한다. 이는 통로일 뿐 아니라 울타리이고, 창문이고, 거울이기도 하다. 조이솝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정착할 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느끼는 존재, 나를 보여주는 일도 감추는 일도 어렵게 느끼는 존재로서의 자신이 가진 불안함과 불완전함을 조형한다. 실리콘, 석고, 철사, 비즈, 실, 깃털 등이 뒤엉켜 만들어진 덩어리들은 검거나 하얀 표면을 두르며 위태롭게 서 있고, 문/창문/거울 위에 다시금 그려지고 새겨지며 스스로를 고백하고, 보호하고, 확인한다.
소수자로서의 고민, 불확실성에 대한 갈등, 자리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임창곤의 작업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회화의 형식에 자신의 질문을 이입하여, 이미지와 지지체를 동시에 해체하고 전치하고 재조합하면서 답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를 이어간다. 확대되는 신체와 섬세하게 그려지는 피부/껍질은 조각나고 재배열되면서 일그러지지만 동시에 움직이고 확장된다. 이는 몸을 가진 ‘인간’이라는 정체에 대한 탐구이자 견고하게 자리잡은 관습과 규범에 질문하는 것, 소외되는 대상을 향한 시선의 한계를 넘고자 함이다.
실내와 실외의 중간 지대인 발코니에 서서 맞는 바람의 감각처럼, 장효주는 경계에서만 느껴지는 양 끝의 낙차를 ‘질감-촉각’을 통해 강조한다. 그의 조각적 실험은 세라믹, 에폭시, 라텍스, 인조 모피, 금속, 직물 등 다양한 재료의 본래 속성과 쓰임을 없애고 예상치 못한 접합의 과정으로, 이는 마치 잘못 꿰어진 단추처럼 혹은 드러나면 안 되는 내부의 것이 새어 나온 것처럼 생경하고 기묘한 상태로 전시장에 놓인다. 장효주가 만들어내는 이러한 언캐니(Uncanny)한 장면과 순간은 매체적 실험이자, 기존의 시스템과 구조에 대한 의심, 새로운 지대의 구축을 위한 시도가 된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보다 나아져야 할 미래를 상상하는 얄루는 수면 아래 다른 시간과 공간을 구축한다. 프로젝션 맵핑, VR, 미디어 월, 디지털 몽타주 등 디지털 작업을 기반으로, 얄루가 그리는 심해의 가상 생태계는 인류의 다양한 역사와 거점이 뒤섞인 공간이자, 아름다움, 기괴함, 두려움, 경외가 뒤섞인 디스토피아도 유토피아도 아닌 곳이다. 얄루는 오랜 시간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되었던 인간 중심적 시각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풍경을 제시하며 기성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가치가 공존하는 미래를 꿈꾼다.
경계, 사이의 존재는 아픔이지만 그 틈에서 자라나는 미묘한 정서와 다양한 사유는 우리의 생각을 확장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가능성이 되기도 한다. 강나영, 얄루, 임창곤, 조이솝, 장효주의 세계(관)는 작업을 하나의 단위로, 개인의 삶과 커뮤니티, 사회와 인류가 도달해야 할 미래를 그려보게 한다. 이들의 제안은 경계를 넘어서기보다 이분법적인 구분이 지워져 서로가 각자의 상태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 다른 방식의 경계 짓기를 헤아리게 할 것이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