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여의 공사기간을 거쳐 지난해 초 오픈한 설악찐곰탕의 주인장은 과거 30여 년간 서전실업이라는 신발 제조공장을 운영하며 업계에 굵은 족적을 남긴 전제창 대표다. 중소기업 대표에서 식당 사장님으로 인생의 행로가 180도 바뀌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한때 직원이 50명인 적도 있을 만큼 잘 됐는데 어느 날 신발공장에 불이 났어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는데 이젠 전업해야 할 때인가 보다 생각했죠. 남은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기 위해 공장을 수리해서 매각하고 여기로 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발공장 하면서도 식당 사장이 되고 싶은 마음을 늘 한구석에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무와 잡초들이 무성하던 곳에 터를 다지고 일 년여에 걸쳐 식당을 완성했다. 지난해 1월이면 코로나로 인해 식당들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던 때. 전 대표 역시 빚을 내서 차렸으면 불안했을 시기였지만 다행히 신발공장 하면서 번 돈으로 월세 낼 걱정은 안 해도 됐다.
깊고 진한 국물에 두툼한 사태 맛이 일품
메뉴를 곰탕으로 정한 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서 가마솥에 끓여내는 곰탕이라면 승부를 겨뤄볼만 하다 생각했다. 다만 장작불에 끓이는 곰탕은 서울에서는 어지간해선 시도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 마침 연고가 있던 가평군 설악면에 식당을 내기로 했다.
“불 피울 때 연기가 많이 나서 마당이 꼭 있어야 해요. 일단 장작을 쌓아놓을 공간도 있어야 하고요. 그래도 옛날 방식 그대로 가마솥에 장작으로 오래 끓여낸 곰탕 맛이 진국이죠. 시장조사를 했더니 여기 가평군 설악면 인근에는 마침 장작불 곰탕집이 없었어요.”
포천에 있던 신발공장 옥상에서 6개월간 매일 곰탕 끓이는 연습을 했다. 모든 메뉴의 베이스가 되는 진한 곰탕 국물은 최상급 한우 사골을 기본으로 하되 용도에 따라 우족, 도가니 등 대여섯 가지 부위의 뼈를 추가해 푹 고아냈다. 원재료를 좋은 걸 쓰니 잡내를 없앨 요량으로 월계수잎 같은 건 일절 넣지 않아도 됐다. 식당 오픈 전 이렇게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설악찐곰탕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자리 잡아 갔다.
“국물 내는 건 힘이 많이 들어서 지금도 제 담당입니다. 마당에 있는 전용공간에 가마솥 세 대를 설치했는데 500인분의 곰탕국물을 끓일 수 있는 대형 가마솥이 두 대, 그보다 작은 것이 한 대죠. 사실 국물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끓이기 전 작업이에요. 고기를 24시간 물에 담가서 핏물을 빼야 하고 한 번 끓여서 불순물을 버린 다음 깨끗이 씻어서 가마솥에 넣어야 돼요. 끓이면서 위로 떠오르는 기름이나 불순물 걸러내는 것도 일이죠. 이렇게 해서 보통 6~7시간씩 세 번, 총 20시간 넘게 끓여야 뽀얗게 우러난 ‘찐’ 곰탕국물이 나옵니다.”
곰탕에 들어가는 고기도 여느 곰탕집처럼 슬라이스하지 않고 푹 삶은 사태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찢고 잘라 넣어 꽤 두툼하니 먹음직스럽다. 오랜 시간 공들여 끓여낸 곰탕국물 맛은 두메산골에 숨은 백년가게가 부럽지 않다. 진하고 구수한 깊은 맛에 그저 천일염 몇 알 더하면 숟가락이 쉴 틈이 없다. 모처럼 힘나는 한 끼를 먹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그가 곰탕집 열 때 다짐했던, 최고의 곰탕국물을 만들자는 목표는 거의 달성한 셈이다.
가평군 설악면 맛집들과 동반성장
설악찐곰탕의 베스트메뉴는 역시 ‘찐곰탕’. 여느 곰탕집처럼 ‘도가니탕’, ‘꼬리곰탕’, ‘우족탕’, ‘수육’ 등이 메뉴에 있다. 사골육수에 고사리, 토란대, 버섯, 차돌양지를 넣고 육개장처럼 끓여낸 ‘얼큰한곰탕’, 신선한 얼갈이배추를 넣고 끓인 ‘사골우거지탕’도 인기다. 김치에 닭고기를 갈아 넣고 빚은 강원도식 ‘사골만둣국’은 흔치 않은 별미다. 술안주로는 수육과 전복을 갖은 채소와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수육전복무침’을 추천.
“단골손님도 많이 생겼지만 손님의 80%는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이에요. 주변에 식당들이 많이 생기고 있으니까 홍천이나 청평 쪽에서 오가는 분들도 우리 설악면에 많이들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잘 돼야 설악찐곰탕도 롱런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설악찐곰탕에선 곰탕집으로는 드물게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받는 비대면 시스템을 도입했다. 손님은 테이블 옆에 놓인 키오스크를 통해 직접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첩첩산중의 시골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보리도 흔치 않아 옥수수밥을 먹으며 고학으로 중고등학교를 마쳤지만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넘쳤고 누구보다 추진력이 있었다. 결혼 후에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30여 년의 세월을 바쳤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다시금 출발선상에 선 전제창 대표.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어깨가 들썩거려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나갈 자신이 있지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니만큼 느림의 미학도 따를 것이다. 식당이라면 당연이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는 게 기본 철칙이라서다. 돈이 아니라 맛으로 승부하는 진정한 외식인의 길에 언제나 그가 있을 것이다. 조이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