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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주에서 中道와 緣起로 산책하는 미술가

왈종미술관 이왈종 화백 | 2014년 01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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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피폐함에 물들었던 격동의 1980년대. 서울에서의 삶은 교수라는 사회적 직위의 무능을 느끼게 했을지 모를 일이다. 물질도, 명예도 마음의 공황을 바로 잡기에는 부족한 것들이었다. 이왈종 화백은 추계예술대학에서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람들과 부딪기지 않을 가장 먼 곳으로의 떠나버렸다. 그곳이 제주도였다.

그이의 유일한 소망은 그림만 그리며 밥 먹고 사는 것이었다. 계절로 치자면 만추(晩秋)에 가까운 나이. 세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이왈종 화백의 말은 빠르지 않고 담담했다. 그 말속에 감춰진 고뇌와, 압축된 삶을 표현하는 목소리엔 ‘마음 비우고 살면 행복해’라는 쉽고도 어려운 화두가 들어 있었다. “1989년이었어요. 정신없었죠. 데모는 말할 것도 없었고요. 추계예술대학교의 학과장이자 교수였는데, 사회가 하도 혼란스럽고 강의도 잘 안 돼서 총장실로 달려가 대뜸 안식년 휴가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제주도에 내려왔어요. 처음에는 그림이나 실컷 그리다 돌아가려 했는데 결국 2001년에 사직서를 내고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벌써 24년 되었군요.”라며 제주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말했다. 이어 이 화백은 “그동안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한 생활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제주도에 내려와 처음 아파트에 거처를 잡고 지하 작업실에서 작업했는데, 하다 보니 답답하고 싫증이 나더군요. 그래서 큰 집을 빌려 살았지만 너무 낡아 수리비가 더 나오는 겁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당시 서울 모 대학 연구소 건물이 있어 구매를 하게 되었죠. 작업실 허가가 안 나 지금의 미술관으로 지어 개관을 한 것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문화재단을 만들었고 2013년 5월 ‘왈종미술관’을 개관했다. 미술관이 위치한 정방폭포는 한 해 방문객이 70여만 명에 이르고 미술관엔 7개월간 8천여 명이 찾을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도에 정착했지만 처음에는 힘들고 외로웠다. 그는 “그동안의 생활을 접고 제주도에 오니 혼자 고립된 격이었습니다. 생각 끝에 우선, 내 몸을 피곤하게 만들자는 생각에 부조와 조각에 몰입했습니다. 노동이 수반되는 작업이었죠. 6개월간 몰두했어요. 다치기도 했지만 몸을 피곤하게 하니까 잡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외로움을 이길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제주의 자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보게 된 제주의 자연. 무질서해 보이지만 가만히 자세히 보면 그들만의 질서가 있었고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가 제주를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알려 주었다. 이어 그는 “그때부터 사람이 멀어지고 자연이 가까이 오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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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화-전시실1, 162×131cm,2011,한지위에혼합.jpg

미술가로 행복을 전하는 순교자

그렇게 시작한 제주에서의 삶은 ‘제주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로 구체화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림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찾고 더욱 세상과 소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이 화백의 그림은 자연과 닮아갔고 행복이 묻어나는 작품으로 그려졌다. 이왈종 화백은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는 인연, 치우치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모든 것에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합니다. 저의 예술관이자 사상관인 ‘일체유심조심외무법(一切唯心造心外舞法 모든 게 마음에 달려 있고, 마음이 곧 법이다)’이 그것입니다. 제 스스로 행복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그림 작업을 할 때, 행복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 보는 사람도 행복해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새로운 것이 사라지면 또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이어 없어지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들에서 연기(緣起)라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고, 중도(中道)와 더불어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저의 삶을 태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소재가 되는 대부분은 그래서 자연이다. 이왈종 화백은 “제주도는 사계절 꽃이 많아요. 저 밖에(정원) 보이는 텃밭에서 태어나는 식물과 1월엔 동백과 매화, 수선화가 꽃을 피우죠. 또 감국 같은 꽃들은 12월, 3~4월에도 피고요. 결과적으로 미술관은 제가 지은 게 아니라 제주도의 꽃들과 새들이 만든 거에요. 제 그림의 소재가 되어 주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10년간 그림 가치가 가장 높게 뛴 작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너무 큰 욕심은 화를 부르게 되죠. 적당한 목표를 설정하는 게 맞아요. 언제 행복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저는 이제 남을 돕는 것이 행복합니다. 2013년엔 다문화가정을 위해 3천만 원을 지원했고 2012년에도 유니세프에 같은 금액으로 지원을 했어요. 좀 더 많은 분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작은 힘이지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왈종 화백은 10년 넘게 제주 서귀포 지역 아이들을 위한 무료 미술교육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올해에도 많은 일들이 이왈종 화백을 기다리고 있다. 5월에는 서울에서 전시회를 갖게 되고 가을에는 중국 북경에서 신진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지금 그는 어김없이 저녁 9시면 잠들고 새벽 2~3시에 일어나 작업에 몰두한다. 왈종미술관 옥상에 있다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자신이라며 세상을 등진 후에도 제주도 바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서있고 싶다고 말하는 이왈종 화백.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를 넘어 행복한 삶을 전달하는 순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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