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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의 정수 수경학(壽鏡學) ‘진실’을 만나는 시간

백파카운셀러상담원 백파 원장 | 2017년 09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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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학(壽鏡學)은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학문이다. 오늘날 수경학의 대가인 백파 원장을 통해 수경학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파 원장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동하며 한국의 수경학을 세계에 알렸다. 2002년부터 미국의 한인방송과 CBS방송 등에서 5년간 재미교포와 현지인을 대상으로 수경학 상담활동을 펼쳤다. 매일 진행된 백파 원장의 ‘즉문즉답’을 통해 명쾌한 운세판단과 가이드를 제시해 인기를 누렸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미국, 중국 등 세계 39개국으로 특별 초청되어 국운과 글로벌기업의 장래를 카운셀링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의 상담 내용들과 기록들은 백파카운셀러상담원 홈페이지(www.baekf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경학은 운명을 통찰하고 상담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상담을 받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방문해 주시면 성심성의껏 상담해 드리겠습니다. 똑같은 상담을 정성껏 진행하더라도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께는 절대 사례금도 받지 않고 언제든 무료로 상담해드리고 있습니다. 제 나이 팔십이 넘고 보니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주위 여러분들을 최대한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당대를 대표하는 수경학(壽鏡學)의 대가(大家)인 백파카운셀러상담원(한국수경학연구원) 백파 원장은 상담활동도 중요하지만 봉사,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 공공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그는 수경학 상담을 통한 봉사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밥차’ 활동, 지역 봉사활동, 나눔활동은 물론 최근 청주 수혜 지역 복구를 위해 많은 기부를 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강원도에 위치한 삼화사 절이 시멘트공장 건설로 인해 이전할 때 위치선정, 자리배치 등 이전과 건립에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수경학은 목숨 ‘수’, 거울
‘경’자로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학문이며 백파 원장은 수경학의 창시자이자 불세출의 명인이다. 직접 백파 원장의 상담을 받아본 상담자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수십년 세월동안 검증된 수경학을 통해 운명을 통찰하기 때문이다. 수경학은 풍수지리와 사업, 직업, 상호명, 가정문제, 작명, 운세 등 많은 분야의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백파 원장을 찾고 있다. 특히 사주는 물론 태어난 시에서도 초시, 중시, 말시로 세분화하여 판단하고 상담자 집안의 본과 지역까지 감안하여 운명을 상담하기 때문에 섬세한 상담이 가능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백파카운셀러상담원을 찾고 있다.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수경학
백파 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경제 발전의 산 증인이다. 특히 6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절 기업인들과 인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산업계 발전은 물론 지리학을 통한 도로, 도시개발 등 국가 기반시설 기획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래서 그는 서민부터 국가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왔다.
1960년-70년대 산업발전의 태동기였던 시절 지금은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기업들도 당시엔 이름조차 생소한 때였다. 백파 원장은 기업들이 사업상 새로운 성장을 시작할 때 또 사업전략을 수립할 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이 형성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지금은 작고하신 당시 창업 회장님들이 기업을 만들기 위해 저에게 많은 상담을 해왔고 저 역시 그분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서 정계 수뇌부와 국내 굴지의 그룹 총수들의 곁에서 도움을 주며, 국운은 물론 사업 방향과 인재 등용 등 중요한 결정에서 상담활동을 해왔습니다.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저서와 정태수 한보그룹 전 회장의 증언에서도 제가 언급된 부분이 있습니다.” 
백파 원장은 수경학의 대가가 되기 전 질곡이 많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그는 태어난지 8개월만에 전염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주위어른의 도움으로 합천 해인사에서 성장했다. 이후 해인사 송파 큰스님이 자식처럼 키워주셨으며, 스님께서 수경학과 지리학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켜주셔서 오늘날 수경학의 대가가 되었다. 이후 큰스님이 타계하시고 큰스님과 인연이 있던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과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도움으로 부산에 거처를 마련하여 수경학을 통한 상담업을 부산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속칭 ‘총각도사’라는 소문이 부산지역은 물론 전국에 자자했고, 백 원장을 만나려면 3-4일은 걸려야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정도로 이름이 났다고 한다. 심지어 백 원장의 상담소 주위에 조그마한 여인숙과 여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상담을 받기위해 손님들이 기다리는 기간에는 주위 숙박업소들이 방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국가 수뇌부의 높은 분들은 물론, 지금은 굴지의 재벌이 된 많은 기업의 창업회장들의 운명을 상담해 주었고 마침내 당대 수경학의 대가(大家)로 성장했다. 그는 남다른 통찰력과 예지력을 가진 인물로 심오한 수경학의 경지를 터득하여 국내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누명으로 인한 억울했던 세월
하지만 백파 원장은 하늘이 내린 재주로 인해 굴곡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정치인의 모략에 빠져 누명을 쓰고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제 상담객 중에는 사업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그린벨트 규제, 납품, 사업인허가 등 여러 가지 애로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일부 돈만 밝히는 비열한 정치인들은 저를 통해 접근해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고 장담하고 정치후원금을 원했고, 저는 순진하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에 그 말을 믿고 상담객에게 정치후원금을 받아 정치인에게 전달하면 그 뒤로 정치인은 나몰라라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일이 처리되지 않으니 상담객은 나를 사기로 고소합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정치인에게 경찰이 전화하면 정치인들은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여 나만 억울하게 당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검사, 경찰 등 사법기관에서 편파적으로 저를 처벌하여 억울했던 울분의 세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백파 원장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노릇이지만 일개 개인이 힘을 가진 고위공직자를 당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에서 모든 누명을 백파 원장이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몇몇 부정한 고위공직자들은 이후에도 백파 원장에게 상담자의 어려운 일을 언제든 해결할 듯이 접근했고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권세를 이용해 모두 빠져버리고 백파 원장만이 책임을 지는 식이었다. 백 원장은 타인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관의 고위직에 있는 이들에게 부탁을 전달했다가 곤혹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무조건 전과가 있다하여 전후 충분한 조사 없이 백 원장에게 벌을 주기도 했고, 심지어 조사관은 백 원장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고위직의 말만 믿고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을 속인 적이 없고, 단 십원도 남에게 손해를 끼친 적도 없습니다. 내가 만약 정말 남에게 부정한 짓을 했다면 어떻게 지금 정당하게 돈을 벌수가 있겠으며, 남들 앞에 이렇게 떳떳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정치인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범법자 취급을 받으며 재산까지 다 빼앗긴 것이 지금도 말할 수 없이 억울합니다. 정치인의 모략에 빠져 전과가 생겼고, 또 전과가 있다하여 이후 사건에서도 일방적으로 누명을 쓴 것이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억울합니다.”
하지만 현재 백파 원장은 과거의 상처와 울분은 가슴에 묻어두고 더욱 봉사활동과 나눔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시 백 원장에게 판결을 내렸던 판사들 또한 억울한 사연을 이제야 이야기하니, 사건일지에 기록된 것을 보고 판결한 것인데 안쓰럽고 안타깝다고 하며 용기를 주었고, 당시 판사 출신의 어떤 변호사는 백 원장을 위한 무료변론을 해주기도 했다. 
오늘날 백파카운셀러상담원 충북 청주 제1사무실과 서울 종로구 제2사무실에는 예약 없이는 상담이 어려울 정도로 상담자가 끊이지 않는다. 백파 원장은 지금도 상담이 맞지 않을 경우 일체 상담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백 원장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상담을 받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께는 사례금도 받지 않고 언제든 무료로 상담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수경학의 대가인 백파 원장은 상담은 물론 봉사와 나눔으로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의 왕성한 활동과 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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