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물방울을 제주도에서 감상한다. 2014년 4월 기공식을 시작하여 올 5월에 완공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지난 9월 24일 개관하였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김창열 화백이 6.25 전쟁 당시 제주에 머물렀던 인연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물방울> 등 자신의 대표 작품 220점을 기증함에 따라 총사업비 92억 원을 투입해 지상 1층, 연면적 1,587㎡ 규모로 지어졌다. 주요 시설로는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특별전시실, 수장고, 교육실과 야외무대, 아트 숍, 카페테리아 등 부대 편의시설을 갖추었으며, 주변의 빼어난 자연환경과 조화로운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다.
김창열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른바 ‘물방울 작가’로서, 미술관은 물방울이란 매개를 통해 곶자왈에 분출한 화산섬을 표현했다. 특히, 미술관은 수장고도 전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콘셉트를 적용해 ‘보이는 수장고’, 기획 및 상설 전시를 연계하고 빛과 바람 등 자연을 실내로 유입하는 통로인 ‘회랑’ 등 김창열 화백의 예술세계 철학을 그대로 승화시켜 담아내고 있다.
또한, 지난 9월 25일부터 개관전시로 <존재의 흔적들>이 진행 중이다. 내년 1월 22일까지 개최되는 개관전 <존재의 흔적들>은 김창열 화백의 기증 작품들을 연대기적 접근으로 시대별 대표작들로 구성하여 화백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간명하고 핵심적으로 살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존재의 흔적들>은 1960년대 초의 ‘앵포르멜’ 시기로부터 19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 물방울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보여주는 ‘물방울의 기원’, 1980~90년대까지 ‘회귀’ 연작을 중심으로 대형 작품들이 전시되는 ‘존재의 흔적들’, 한자 및 천자문 등 화면의 주제와 배경의 관계에 있어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시도들을 보여주는 ‘물방울의 변주’로 구성됐다.
김창열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사사 받은 그는 붓글씨를 통해 회화를 접했고, 광성고보 시절 외삼촌으로부터 데생을 배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해방의 혼란 속에서 사설미술학원인 경성미술연구소에 다니다가 몇 달 후 이쾌대 선생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워 나갔다.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곧이어 일어난 6․25 전쟁으로 1950년 학업을 중단했다. 그는 강제 징용을 피해 월남하여 경찰학교에 지원하였고, 1955년까지 경찰생활을 지속하였다. 특히 1952년부터 1년 6개월간 제주에 피난 와서 제주시 도심과 애월, 함덕 등에 거주하며 제주와의 인연을 쌓았다. 1955년 고등학교 교사 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한 후, 경찰에서 나와 서울과 수도권의 고등학교에서 짧은 기간 동안 미술교사로 일했다.
1957년에는 박서보, 정창섭 등과 함께 한국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한국의 급진적인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세계무대로 눈을 돌린 그는 1961년 제2회 파리 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출품하였다. 김창열은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미국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 League)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1969년 백남준의 도움으로 파리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이를 계기로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1970년 파리에서 약15km 떨어진 마구간에 아틀리에와 숙소를 마련한 그는 이 시기에 평생의 반려자인 마르틴 질롱을 만났다. 1972년 파리 살롱 드 메에 <Event of Night>를 출품하며 유럽 화단에 본격적으로 데뷔하였고, 이후 현재까지 물방울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4년 프랑스 국립 쥬드폼 미술관에서 물방울 예술 30년을 결산하는 전시를 개최하였다.
김창열은 초기에는 추상화 위주였으나 1972년부터 물방울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물방울 작가'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국내 및 해외 미술계에서도 미학적 논의와 관심을 불러 일으켜 한국 현대미술의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백남준, 이우환 등과 더불어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 컬렉션 되어 있으며 더욱이 그가 활동하였던 프랑스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는 서울 평창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Event of Night>(1972), <Water Drops>(1978), <Recurrence>(1989)등이 있다.
한편,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미술관 관람이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65세 이상 노인이나 장애인, 6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이며 개관을 기념해 3개월 동안은 전 입장객을 무료로 맞이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김창열미술관의 개관으로 도민 및 연간 천만 명이 넘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예술작품 관람기회와 더불어 문화 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전국적인 문화예술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는 발판이 됨은 물론 도내 문화예술 활동 활성화 등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