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활자가 대장관을 이루며 우리 앞에 다시 펼쳐진다. 테마전 <활자의 나라, 조선>이 지난 6월 21일 시작되어 오는 11월 1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국가 제작 활자 82만여 자의 전모를 최초로 공개한다. 특히 50만여 자에 달하는 금속활자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질적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 <활자의 나라, 조선>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활자 보관장을 분석, 복원한 결과를 바탕으로 활자를 직접 사용하고 책을 찍던 당시 사람들의 독특한 활자 분류와 보관 방법을 처음으로 소개한다. 전시장 한 가운데는 8×1.5M의 면적에 활자를 보관했던 옛 서랍에 넣은 활자 5만 여자를 펼쳐, 조선이 ‘활자의 나라’였음을 실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의 의미와 활자장 조사, 복원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물도 마련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를 활용한 사자성어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3D 프린트로 출력한 활자 복제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활자 82만여 자는 대부분 17~20세기 초까지 중앙 관청과 왕실에서 사용한 것이다. 한 왕조에서 일관되게 사용하고 관리한 활자가 이처럼 많이 남아 있는 예는 전무하다고.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문화유산인 것.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글자체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제작 기술도 정교하여 예술품으로도 손색없다. 검박함을 미덕으로 여겼던 유교 국가 조선에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예술품을 만드는 대신, 금속활자와 이것으로 인쇄한 책에 조선시대 예술과 기술을 집약시켰던 것이다. 국가와 왕실의 보물이자 전유물로 여겨졌던 금속활자는, 유교 통치를 위해 필요한 책이나 통치자의 권위를 보여주는 책을 간행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1403년(태종 3) 태종이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든 이후의 통치자들은 수십 차례에 걸쳐 수백만 자의 활자를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활자는 15세기에 주조된 한글 금속활자 30여 자 외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이번 전시는 활자나 책을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전시 방식을 탈피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를 7개 주제로 나누어 소개함으로써, 조선시대 정치와 문화사에서 활자의 제작과 사용이 갖는 의미를 조명하고자 했다. 또한 지난 수년간의 활자 정리와 조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고증되지 않은 활자들의 실체를 밝히고,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활자들도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정조가 정리자(整理字)를 만드는 과정에 참고용으로 수입한 목활자를 처음 공개한다. 이 활자는 청나라 궁중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13세기에 위그루 문자로 만든 활자를 제외하고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로 알려져 있다. 활자와 함께 전해 오는 활자 보관장들의 전모도 처음으로 공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를 위해 지난해부터 이 장들을 수리 복원했으며, 그 결과 장의 제작연대와 활자 보관방법 등을 밝힐 수 있었다. 3종의 장 가운데 위부인자(衛夫人字)[갑인자(甲寅字)의 별칭]은 나무 나이테 분석 결과 17세기에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목가구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자료이다. 정리자(整理字)를 보관했던 장에는 안쪽 깊숙한 곳에 소목장(小木匠) 이름과 제작 연대가 쓰여 있어, 이 장이 1858년(철종 9)에 정리자를 다시 주조할 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당시 활자들은 한자 자전(字典)과 달리 부수를 줄여, 효율적으로 보관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획수가 아니라 자주 쓰는 글자와 그렇지 않은 글자로 나누어 보관했다. 이런 방식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조선시대 활자를 다루던 사람들의 독창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활자의 나라, 조선> 전시가 진행되는 10월에는 한글날도 있어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를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 벅찬 조선시대의 활자를 만나러 떠나는 시간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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