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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호적자 호적 만들기’ 캠페인 선도한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

커버스토리 이성원 원세종새마을금고 이사장 | 2016년 05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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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98.11.1. 합강둔치에서 가족 체육대회를 하면서 우리잘살고 있다고 외치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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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폐허 속 온 국민이 굶주림과 고강도의 노동을 견뎌내야 했던 보릿고개 시절, 부모 형제를 잃고, 헐벗고 굶주리며 방황하는 거리의 천사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인권운동을 펼친 인물이 있다. 50여 년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철학으로 청소년 선도와 지역봉사에 앞장서온 원세종새마을금고 이성원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호적도 없이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 무호적자들을 위해 직접 플랜카드를 메고 ‘호적 만들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쳐 8만여 명에게 구제의 길을 열어준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다. ‘우리의 가난을 우리가 몰아내자’고 부르짖으며 전국의 다리를 찾아다니며 걸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 그는 ‘거리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이에 본지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인권운동을 선도하며 숭고한 봉사의 삶을 이어온 인간상록수, 이성원 이사장의 특별한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한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해온 봉사인 
국내 최초로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며, 의식을 깨운 이성원 이사장은 반세기동안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아름다운 삶을 살아왔다. 
“1959년, 군전역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거리에는 배고픔에 허덕이는 버려진 아이들이 가득했습니다. 이들은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대신 행인들의 차가운 시선과 동냥에 익숙한 아이들이었죠. 젊은 패기에 언젠가는 이 청소년들을 선도하여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키우고 싶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성원 이사장은 조치원 철도역무원으로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청소년을 위한 헌신의 봉사도 본격화했다. 역 주위를 배회하며 앵벌이를 하고, 다리 밑에서 생활하는 부랑아들을 진심으로 돌봤다. 그는 딱한 처지의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 “가난한 백성을 위해 ‘걸인청’을 만든 토정 이지함 선생의 16대 손이자, 가족보다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선친(이영복 선생)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대를 잇는 봉사정신을 이야기했다. 그간 이성원 이사장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연합의 창설위원, 경제정의실현연합, 흥사단, 민족통일운동 한국유권자연맹, 전국시민단체연합 등에 몸담아 반부패, 바른언론, 참교육, 경제정의, 환경보전, 복지증진, 민족통일 등 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도 꾸준히 전개해왔다. 지난 2000년에는 UN에서 열린 세계 NGO대회에 한국인 대표로 참석한 바 있으며, 그간 나눔의 상, 인간상록수상 등을 비롯한 각종 봉사 관련 수상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거리의 천사들 위해 희망원 설립, 자활교육에 힘써
이성원 이사장은 철도공무원 사표를 내고 부랑아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우려한 부모님의 성화로 쫓겨나듯 서울로 갔다. 한양탄광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다가 고교시절 인연을 맺은 신생 지역사회학교 김일남 교장을 만나 무료로 야학봉사를 하기 위해 탄광회사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대학생 봉사자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고향 땅 조치원에서 불우한 학생들을 돕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생학교 봉사를 정리하고 조치원으로 귀향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역 주변에서 깡통을 차고 다니며 동냥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후 역 대합실에 상담소를 개설하여 청소년 상담을 했으며, 점차 일회적인 선도는 한계가 있음을 판단하고, 그들을 위한 따뜻한 안식처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1964년 부친 소유의 땅에 희망원을 건립했다. 이후 500여명의 원생들을 돌보면서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활교육에 집중했다. 국가 보조금 없이 순수 사재를 털어 희망원을 운영해온 그의 열정에 희망원생들은 훌륭하게 성장하여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땅 팔고, 양복을 팔아서 힘들게 희망원을 이끌어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의 도움을 받은 희망원생들은 여전히 그를 원장님으로 부르며 아버지처럼 따른다고 한다. 신년에는 희망회 가족들이 세종매일 신문을 통해 그간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이성원 이사장의 공로를 기리며, 감사함을 전한 바 있다. 그들은 “순수사재로 55년간 희망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자립·자족·자활·갱생토록 지도해주신 덕분에 500여 희망원 가족은 대한민국의 어엿한 국민으로 성장하여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이사장은 농촌 청소년운동의 일환으로 4H구락부 운동과 가축보급 운동도 펼쳤으며 방황하는 학생들을 선도하기 위해 학교순회 선도 교육에도 적극 나섰다. 또 고아들이 어엿한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농사짓기, 철사 수공품 만들기, 운전기술 등 각종 기술을 가르쳤다. 1970년대에는 국내 최초 민간인 주도 합동결혼식을 열어 1,500여명의 하객들의 축하 속 희망원 부부들을 위해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무호적 아이들에게 호적의 선물을 주다 
“‘무호적자 호적 만들기 캠페인’을 주도하여 결실을 맺은 것이 가장 보람이 됩니다. 1960년 대, 무호적자수가 무려 12만 명이었는데요, 그 가운데 병역기피자나 범법자 4만 명을 제외한 8만 명은 갖가지 사연으로 호적을 갖지 못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권리나 의무를 행사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무호적자들은 학교 교육은 물론 취업을 해서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었다. 또 병역의 의무는 물론이고 결혼을 해도 혼인신고도 못했으며, 자식을 낳아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이 이사장은 인간의 기본권인 호적이 없음으로써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처참한 삶을 불쌍히 여기고, 1965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을 주창했다. 각 언론사뿐 아니라, 대통령, 대법원장, 국무총리, 내무부장관, 서울시장 등에게 호소문을 발송하고, 직접 플랜카드를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호적만들어 주기 캠페인을 펼쳤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진정 보기 드문 위대한 업적이다. 민간이 시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는 오직 무적자들에게 인권을 찾아주기 위한 일념으로 혼신을 다했으며, 그의 불굴의 의지는 결실을 맺었다. 이성원 이사장이 무호적자들을 사회 안전망에 들여놓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법무부로 하여금 무호적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이 발표되고, 호적 정리뿐만 아니라 증민등록증도 발급받게 되는데 기여한 것이다.  
“무호적자 호적만들기 캠페인을 선도한 공로로 법무부로부터 ‘인권 옹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전 그저 사회로부터 외면받아온 부랑아들의 인권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작은 불씨를 지폈을 뿐인데, 나라에서 크게 인정해주셔서 부담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진짜 힘든 일은 이후 인권을 위해 싸워주신 운동가들이 해내셨지요. 제 작은 행동으로 사회적 약자에게도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사회에 각인시켰다는데 만족합니다.”
‘참다워, 정다워, 아름다워’의 인생철학으로 진정한 봉사의 삶을 이어가는 이성원 이사장. 그는 최근 ‘다워야 운동’ 특강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다워야 운동’은 청소년 선도의 일환으로 그의 인생철학을 빗댄 것이다. 이 이사장은 “부모는 부모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서로 협력하고 공존하며 함께 승리하는 신바람 나는 삶이 바로 ‘다워야 운동’의 핵심” 이라고 설명했다. 팔순에도 청춘의 열정을 간직한 채 청소년 선도와 사회 개혁에 앞장서는 이성원 이사장. 그는 앞으로 원세종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서 지역민들을 위한 서민금고를 운영해 나갈 것이며, 힘이 닿는 한 사회봉사에 전념할 것이란 포부를 전했다. 사랑의 정(情)을 중시하며, 한평생 소외계층을 위해 온정을 베풀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그의 숭고한 봉사정신은 존경받을만하다. 50여 년간 걸어온 아름다운 봉사의 발자취를 기리며, 이성원 이사장이 모쪼록 건강을 지키면서 가치있는 행보를 이어가길 기대한다. 그의 여로에 환한 빛이 비추기를 바란다.  정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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