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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의 테마는 진화, 삶의 아픔마저 아름답다

김규리 작가 | 2013년 09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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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림이라기보다 사상(思想)에 가까운 것이었다. 붉은 혹은 푸른 바탕 위에 마치 토르소처럼 던져진 역동적 드로잉. 그 위에 인체의 구간을 거침없이 그렸다 지우고 지웠다 다시 그려낸 고뇌의 흔적들. 인간의 몸에 대한 원초적 탐구를 이토록 잘 실현해 낸 김규리 작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발전, 변화, 혹은 혁명을 갈구하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진화(evolution)'로 일축된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처럼 강건한 작품세계를 가능케 했을까. 9월의 어느 날. 김규리 작가는 다소 평범한 시선으로 기자를 만났다.
그녀는 10월에 있을 인사아트센터에서 아트페어로 분주하다했다. 작품을 말하는 눈은 빛나고 그림 그리는 손에서 에너지가 분출되는듯했다. 화력 15년의 김규리 작가. 홍익대 미술대학과 미술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후진을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백여번의 단체전, 열 여섯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제 작품의 주제는 에볼루션(Evolution)이예요. 진화죠! 진화론적 진화가 아니라 꿈꾸며 변화해가는, 그런 진화.” 인간의 마음속에 보여 지고 싶어 하는 외형의 세계와 보여 지지 않기를 원하는 내면의 세계가 있다면 그녀의 작품은 후자 쪽에 가까울 듯 싶었다. 때로는 비우는가하면 때로는 채우는 과정의 반복. 그 안에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기 위한 상처의 편린들. 도려내고 치유해가는 순환 속에 작가는 무엇을 표현해내고 싶었던 것일까. “보이지 않는 부분들에 대한 공허와 상실, 아픔의 편린들을 다 감싸 안을 수 있는 진실이 그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죠. 나와 상대가 함께 찾아가는.” 한 치의 뒤돌아 봄 없이 앞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현대인에게 김규리 작가의 작품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현대인이 가지는 허무의 정서를 정확히 관통하는 그녀의 관념은 쓸쓸함마저 아름다운 인간 내면세계에 천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앞으로 혹은 옆으로 엉켜있는 작가의 형상들은 어둠 속에서 시작하는 빛인 냥 희망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로 달리는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의 이미지로 다함없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마치 베토벤의 열정을 연상케 한다. 모든 욕망의 근원지인 몸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고민, 애써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나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진실들을 여과 없이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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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내 일기장, 시시각각 변화할 수 있어

전부가 다르게 보이고 일부는 보여 졌다 사라질 수 있는 형상. 그래서 김규리 작가는 보이는 것이 곧 사라짐이고 사라지는 것이 곧 나타남이라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 “그림은 내 일기장이죠! 들여다보이는 모습, 엉켜있는 모습. 그 모습은 내가 될 수도 있고 타인이 될 수도 있어요.” 자신만이 보길 원했으나 타인에게도 보여 질 수도 있는 그 일기장을 보며 많은 이들이 감동했고 진화했다. 그리고 싶어 하는 구상, 이미지를 빠르게 스케치한 다음 인체에 색을 칠하지 않고 바로 덧칠하는 김규리식 화법(畵法)은 앉았다 섰다 달려갔다를 반복하는 드로잉과도 같이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한 사람인 것 같으나 여러 사람이 모인 군중이 될 수도 있고, 군중이기도 하면서 한 사람의 마음을 모이는 것이죠. 이성과 감성을 반복적으로 지우고 창조해가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드러난 모습이 작품이 됩니다.” 정열의 시선으로 아파하는 모든 것들을 끌어안는 작가의 작품계보들은 삶에 대한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미래는 충실한 오늘의 모습, 더 나은 자아(自我) 찾기로 향할 것
김규리 작가는 창의적인 예술교육으로 아이들에게 열린 오감을 일깨우는 미술교육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알모드미술센터(서울 목동)에서 영재미술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는 그녀는 자신만의 독창적 시각과 아이들의 천연한 감성을 새로운 텃밭으로 일구어가는 중이다. 자신의 오늘과 타협하지 않고 오늘의 감정에 충실 하는 과정에서 내일이 이루어진다고 확신하는 김규리 작가. ‘인간, 정체성, 아픔, 밝음, 희망, 내일’ 을 그려가던 작품 활동은 최근 다시 초기의 작품 세계로 회귀하고 있다. “아픔을 조용히 불러내 밝게 승화시킨다는 것이, 변함없는 주제로 평온을 갈구한다는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일까.
김규리 작가는 특별히 인간의 뒷모습을 잘 표현해 낸다.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감추고 싶어도 진실이 사람들의 뒷모습에서도 느껴지거든요. 뒷모습에도 인간의 내면이 보이고 보여지는 그대로를 나타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있을까요?”라 답한다.
학습되어 있는 답안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현대인.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시간들 속에 우리는 무엇을 찾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저, 절실히 자리하고 그 무엇을 표출한 것일 뿐이라 겸양하는 김규리 작가. 그침 없는 작품 활동 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가는 그녀의 흔적이 한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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