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일부터 22일까지 제주 커피박물관 바움에서 황정숙 캘리그라퍼의 개인전이 열렸다. ‘멎다’의 타이틀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 그는 한국화와 캘리그라피를 접목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그의 전시작들은 깊어가는 가을, 제주의 아름다움과 은은한 커피향이 어우러진 예술적 공간에서 일상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됐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자적인 화법,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을 화면에 담아 세상과 소통하는 황정숙 캘리그라퍼. 그의 묵향 가득한 예술세계를 주목해보자.
제주의 향취 담은 개인전, 독자성 인정받아
“지난 9월 롯데갤러리에서 한가위와 한글날을 맞이해 ‘마치 달처럼’이란 타이틀로 ‘한글멋글씨’전을 마쳤습니다. 당시 강병인, 이진경 선생님과 함께 작업한 것은 신인작가인 제게 더없이 의미 있는 전시였죠. 이어 지난주까지 제주 커피박물관 바움에서 개인전을 마치고, 12월 제주 더클라우드 호텔 개인전 준비와 더불어 새해 전시기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황정숙 캘리그라퍼는 근 몇 달간 빡빡한 전시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치기도 했지만 상업적 용도가 아닌, ‘전시위주의 작품 활동’을 추구했던 그이기에 매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며 밝게 미소 지었다. 최근 제주 전시에 열심인 그는 쉼의 공간으로의 제주가 전시기획과 일치했다고 밝혔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에서, 전시를 통해 호흡을 한 번 멈추고, 뒤안길을 돌아보며 휴식을 찾고 싶었던 황정숙 캘리그라퍼. 그의 내면과 결부된 ‘그치다, 멈추다, 쉬다’의 의미로 전시주제를 찾다가 ‘멎다’의 타이틀을 결정했고, 발자국 로고를 통해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카페 분위기에 맞게 커피를 이용하는 등 신선한 재료와 창의적인 기법을 선보였으며, 한국화를 전공한 그답게 먹과 종이 활용이 다채로워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캘리그라퍼 황정숙만의 독자적 작품성을 인정받고, 색이 있는 캘리그라퍼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춤을 추듯 글씨를 쓴다”
과거 한국화를 전공한 그가 캘리그라퍼로서의 전환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경북대 미대를 졸업하고, 10년간 후학양성을 도모하면서도 그만의 독자적 예술세계를 펼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일사 석용진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손글씨 작가 강병인 선생에게 캘리그라피를 사사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그만의 감성과 화법을 연구해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캘리그라퍼 황정숙의 작품은 바다위에 뜬 달, 해월(海月)이란 그의 아호처럼 바다의 청량함과 달의 따스함이 공존한다. 자유로운 선의 흐름과 절제된 구도로 신선한 조형성을 드러내는 그의 화면은 30대의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 오랜 시간 쌓아온 탄탄한 내공을 가늠케 한다. 점, 획, 색, 구도 하나 하나의 자연스러움을 담고자 한국화 특유의 자연미를 살려 완성도를 높였다. 비움의 여백, 여운과 울림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끊임없이 비우고 덜어내는 과정을 수행했던 작가 내면의 흐름이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붓을 들고 나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 자문한다. 나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또 물어본다.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속의 귀를 대고 간절히 묻다보면 어떤 형상들이 그려지고 마음 속의 글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작가노트 中에서
그의 첫 전시 타이틀은 락서(樂書)였다. 그의 좌우명 ‘일일호일(日日好日)’에 맞게 자유롭게, 즐겁게 글씨를 쓰자는 작가의 가치관을 담았다. 그가 글씨와 감성 표현에 있어 자유로운 캘리그라피의 매력에 반한 이유이기도 하다.
“캘리그라피는 기호의 규칙성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저는 그림과 글씨를 작품에 함께 표현하죠. 작품 속 글씨와 그림은 자음과 모음처럼 어우러져 의미를 확장해 나갑니다. 나의 작업은 ‘글자를 쓴다’의 의미가 아니라, 춤을 추듯 그린다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황정숙 캘리그라퍼. 그는 젊지만 강하다. 글씨와 그림을 접목해 전통과 현대의 창조적 모색을 시도한 그의 작품은 분명 경쟁력이 있다. 한국화 전공과 더불어 서예를 하면서 다져진 필력과 지식의 깊이는 앞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끄는 중추역할을 할 것이다.
“작가로서 보람되는 때에는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죠. 지난 롯데백화점 전에서 한 어르신이 제 작품 앞에서 10분 정도를 멍하게 서있었다고 얘기하시더군요. 작가로서 참 보람됐죠.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행복했던 전시로 기억됩니다.”
그만의 독특한 색으로 작품세계를 펼치고 싶다는 황정숙 캘리그라퍼는 진실한 눈빛으로 감동을 전하는 관객과의 소통 속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는다. 대화하듯, 노래하듯 아름다운 글귀를 시처럼 담아내는 황정숙 캘리그라퍼. 앞으로 지친 현대 일상에서 누군가와의 소통을 원하는 이 시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을 수 있는 캘리그라피의 창조적 세계를 열어가길 바란다.
작가블로그 (http://blog.naver.com/tiffany8514)
정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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