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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를 화폭에 담다

커버스토리 이왈종 화백 | 2015년 12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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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 낭만을 품고, 순수한 감성으로 창작에 매진하는 이왈종 화백은 대한민국 예술계를 주도하는 블루칩작가다. 그는 20여 년간 ‘제주생활의 중도와 연기’를 화두로 철학적 사유를 내포한 한국적 자연미를 표출해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시혼이 투영된 화폭, 삶의 포용력이 배어있는 따뜻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이왈종 화백은 평화로운 세상을 갈망하며 생명과 교감하고,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예찬하고 있었다.  

“사회가 어지러워 제주에서 몇 년간 그림만 실컷 그리다 갈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26년째입니다. 제주에 처음 올 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는 없어요. 밤 9시면 잠들고, 오전 3시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하죠. 잠은 미술관 옆 2평 짜리 황토방에서 자고, 작업실은 미술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마련해 놓았습니다.”

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이 화백은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소위 잘나가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홀연히 제주로 떠나 정착한 지 20여년이 흘렀다. 추계예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고자 택한 제주행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제주 특유의 신비로운 자연에 매료된 이 화백은 팍팍한 도시생활을 과감히 청산하고 제주생활의 중도와 연기를 테마로 소박하고 풍요로운 일상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자신의 예술 철학을 동심의 조형어법으로 자유롭게 구성하며 풍부한 색채로 밝고 화려하게 표현했다. 그의 그림은 현실과 비현실의 공존이 특색이다. 하늘로 물고기가 날아다니고, 인간보다 큰 새가 등장하며, 나무속에서 사람이 뛰어논다. 일상 속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화면 속에 원근법을 뛰어넘어 자연스럽게 어울려 표현된다. 그의 화폭에는 삶에 대한 건강한 시선과 더불어 온유함과 지상낙원의 평화가 담겨 있으며, 동·서양 미학의 간극을 조율하고 화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술관 개관 이후, 2년 만에 다시 만난 이 화백은 중후함을 한층 더해 멋스러웠으나, 스스로 “유통기한이 지났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칠순의 나이를 의식한 듯한 말이었지만 정작 만면에는 여유와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이 화백과의 인터뷰는 미술관을 함께 둘러보며 시작됐다. 왈종미술관은 제주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 건축은 스위스 건축가 DAVIDE MACULLO와 건축사 한만원 씨가 공동설계했다. 조선시대 백자 찻잔을 모티브로 설계한 건물은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미술관 1층에는 어린이 미술교육실과 수장고, 도예실이 있고, 2층에 마련된 전시실에서는 회화와 도자기, 목조각, 판화 등이 펼쳐져 있다. 작품 수십 점을 한데 담아낸 비디오아트도 눈에 띤다. 한쪽에는 춘화집과 춘화가 그려진 술잔이 전시된 ‘미성년자 관람 불가’ 코너도 있다. 3층은 이 화백의 휴게실 겸 작업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안내하는 이왈종 화백을 따라 전시실을 감상한 후 옥상으로 올라갔다. 수평선을 이룬 망망대해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작가의 작품과 끝없이 펼쳐진 자연의 대작이 한데 어우러져 평온함을 주었다. 이렇듯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이 그의 예술적 영감을 쉼 없이 흔들고, 화폭을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막걸리 한 잔 하러 가지.”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가 건넨 말이다. 푸른 하늘 아래 사유에 젖어 있는 이왈종 화백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정방폭포를 지나 그가 자주 애용한다는 단골집으로 갔다. 막걸리 예찬론자인 그는 막걸리 한 잔을 마시자,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고요한 새벽녘, 막걸리 한 잔 그윽하게 마시면서 창밖을 바라볼 때 가장 행복하다”며 일상에서의 소박한 행복을 전달하는 이 화백은 새벽시간에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작업에 매진한다고 했다. 언제나 진중한 작가인 이왈종 화백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었다. 슬쩍 건네는 농담 속에서도 삶의 깊이가 묻어나왔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처음엔 혼자 내려와서 치열하게 작업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늙었죠. 하지만 여전히 사람 많이 안 만나고 담백하게 사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최근 변화는 이왈종 화백의 곁에 가족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수학한 아들 이규선 씨가 귀국해 왈종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그의 일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 뒷바라지에 혼신을 쏟았던 아내 김예순씨도 제주로 내려와 미술관 경영을 함께 하고 있다. 화려한 예술가의 삶을 꿈꾸지 않는다는 이 화백은 이발소 그림을 그리더라도 가정을 책임지며, 행복을 찾는 작가이고 싶다며 소신을 밝혔다. 

“외국여행을 많이 다니면서도 늘 생각나는 건 집이예요.”
그에게 제주에서 제일 좋은 곳이 어딘지 묻자, 주저함없이 집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집이란 쉼의 공간이자 영혼의 안식처인 것.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에 그의 화폭은 언제나 아름답고, 활기가 넘친다. 제주의 자연을 닮은 예술가 이왈종. 따뜻한 감성이 담긴 작품들로 관람자를 한 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은 물질만능주의에서 오는 심리적 공허함을 달래는 위로와 격려의 손길과도 같다. 소박함 속 예술의 깊이를 다지는 그가 앞으로도 그만의 철학을 담은 작품세계를 펼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란다. 정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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