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 내면의 심리를 상징적 조형언어로 표현하는 양순실 작가. 그는 독특한 발상과 차별화된 기법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양 작가는 신체가 절단된 웨딩드레스, 빈 의자, 면사포 쓴 아이의 뒷모습, 꽃과 해골 이미지 등을 통해 가사와 육아로 점철된 억압된 여성을 상징화한다. 화면 속 섬뜩하고 기괴한 형상들은 상처투성이의 자아, 작가 자신의 얼굴이자 영혼의 그림자다. 속박된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지만,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피 흘리는 내면을 담았다.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며 고뇌하는 작가 양순실. 본지는 개성 넘치는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했다.
“내 그림은 들릴락 말락한 소리, 구석에 조용히 앉은 사람, 큰 소리로 울지 못하는 사람, 어눌한 말솜씨, 세상 안을 엿보는 여자, 느릿느릿 걸어가는 병약한 영혼에 대한 위로다.”
-작가노트 中
양순실 작가는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 내재적 감정을 이미지화 하며, 함축과 은유의 절제된 표현으로 화면을 구성해 나간다. 외부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타인에게 비춰지는 외면과 내면의 갈등을 드러낸다. 사회적 억압이라는 베일 속에 가려진 내적 욕망을 그만의 언어로 분출시키는 작업은 고된 일상을 벗어나 일말의 희망을 찾는 과정임과 동시에 고독한 내면을 위로하는 행위와 같다. 결혼과 동시에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작가는 가사와 육아의 지친 일상 속에서도 예술적 집착을 이어왔다. 1998년 첫 개인전 <느린호흡>을 시작으로 <들뜨지말며, 깊게 추락하지도 말고>, <깊은하루>,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그리고 <평범함의 깊이>까지 고요한 그의 성정에 맞게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며, 세상과 소통했다. 드레스, 식탁, 옷장, 소파, 나무, 꽃, 새, 나비 등은 그의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코드다. 이는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숙명적 고통을 대변한다. 아크릴로 정교하게 묘사된 형상들은 스토리텔링의 이미지를 제시하며, 강렬한 색채와 의도된 구성으로 낯선 공간을 만들어낸다. 다소 잔혹한 화면으로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은 외형적 아름다움이 아닌, 내면의 감성을 울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관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죠. 대다수 놀라거나, 불편해하고,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감성에 젖는 분들도 많습니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관람자의 몫이죠. 때론 작품이 대중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지만, 남들 시선 의식하지 않고, 내 길을 가고 싶습니다. 보기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이 진정한 예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은 감상 거리에 따라 색다른 감정을 부여한다. 먼 시선에서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이미지로 보이다가도, 가까이 다가서면 해괴한 형상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현실의 아픔과 서러움을 간직한 인간 내면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근작에서는 꾸준히 작업해온 의자와 드레스 시리즈를 비롯해 민화적 요소가 더해진 해골과 꽃, 문자가 주를 이룬다. 최근 문자도의 영향으로 동서양이 공존하며, 여성성이 짙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로 어둡고 우울했던 색채들도 환한 빛으로 변화하고 있다. 작가이자 경영자로서 새로운 변화를 맞은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예술혼 담은 바닐라하우스
현재 양순실 작가는 전주 한옥마을 인근 서학동 예술인마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바닐라하우스란 이름의 이 게스트하우스는 바닐라컬러의 모던하고 현대적인 신축건물을 자랑하며, 복층 구조의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췄다. 특히, 1층은 화가의 작업실,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돼 자연스럽게 화가의 작업실을 관람하면서 작가와 대화할 수 있는 예술적 감각의 공간이다. 2층의 각 객실에는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어 감상을 통해 일상에 지친 감성을 정화하는 따뜻한 쉼의 공간을 제공한다. 타 게스트하우스에 비해 넓은 방과 욕실, 훌륭한 방음시설을 갖춰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정혜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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