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이 빗발치는 사지(死地)에서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었던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헌신적인 기자 정신과 예술가적 관점이 돋보이는 그의 사진 160여점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전쟁터에서 영혼을 바쳐 사진을 찍었던 그의 일생이 전쟁의 희생양으로 막을 내리기까지 로버트 카파는 모두 다섯 번의 전쟁을 취재했다. 스페인 내전(1936~1939), 청일전쟁(1938), 제2차 세계대전(1941~45), 첫 번째 중동전쟁(1948), 인도차이나 전쟁(1954)이 그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전인 1913년 10월 22일 헝가리 유대인으로 태어난 로버트 카파는 전쟁사진의 역사를 만든 전쟁 사진작가다.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 중 지뢰를 밟고 사망했던 로버트 카파의 일생에 대해 그의 절친한 지인이자 사진작가인 에드워드 스테이캔은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는 용맹하고 힘차게, 매우 진실되게 살았다”는 말로 그의 삶을 대변했다. 단순히 종군기자로 분류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로버트 카파는 전쟁을 싫어한 전쟁 사진작가다. 그는 모든 생애를 걸쳐 인간의 모든 면을 찍고자 했고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며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위트가 넘치는 카파의 사진은 따뜻한 마음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이번 전시는 ICP소장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ICP는 1974년 로버트 카파의 동생 코넬 카파가 형의 기록과 추억을 보존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재단이다. ICP재단은 로버트카파의 기념재단일 뿐 아니라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 8월 2일에는 ICP의 수석큐레이터 크리스토퍼 필립스가 한국을 방문해 강연을 진행함으로써 로버트카파의 정신을 기렸다. ICP에서 직접 소장하고 프린팅한 오리지널 작품으로 전시되는 로버트 카파전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로버트 카파의 스페인내전 음화(陰畵:피사체와 명암이 반대인 사진의 화상.negative image)에서 발췌한 수작(秀作)을 선보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파리의 카파 스튜디오에서 없어진 후 행방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던 스페인 내전 음화 160점의 필름은 2007년 12월 말, ICP에 비밀스럽게 도착한 맥시칸 수트케이스에는 카파의 사진작품과 당대의 명인 타로와 시모어의 필름도 동봉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바로 이 작품들 중 몇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선(戰線)에서 돌아오면 로버트 카파는 파리에 머물고 있는 작가, 기자, 예술가들과 우정과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살아있는 동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파블로 피카소의 영원한 친구였으며 앙리 마티스가 좋아했던 로버트 카파.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숨진 첫사랑 ‘게르다 타로’를 잊지 못해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혼을 뿌리친 로맨티스트로도 유명하다.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든 있어도 결코 무관심 할 수는 없는 남자였다’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회상처럼 로버트 카파는 당대를 움직이던 진정한 보헤미언이자 아티스트였다. 작가 존 스타인벡, 어윈쇼, 아트 버크워드, 시나리오 작가 피터 베에르델, 영화감독 존 휴스턴과 아니톨 리트박, 피카소의 아내 프랑수와즈 질로 또한 카파의 좋은 친구들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로버트 카파가 이들과 교류하며 찍은 유머러스한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160여점 모두가 당대의 걸작이다. 그 중에도 주목해야 할 작품으로 <오마하 해변에 착륙하는 미군 부대 공격 개시일>을 빠뜨릴 수 없다. 1944년 6월 6일, 카파가 노리망디 상륙작전 중에 촬영한 가장 유명한 사진인 이 작품은 상당히 흔들리는 상태로 포커스조차 맞지 않으나 이 흔들림이 당시의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의 보도사진 중 걸작으로 꼽힌다. 1954년 5월 25일에 찍힌 <지뢰밭의 군인들>은 카파가 죽음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풀이 무성한 둑에 올라 인도차이나 남딘 마을에서 타이빈을 향해 걸어가는 프랑스군의 뒷모습을 찍던 카파는 사진을 찍고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대인지뢰를 밟고 만다. 그렇게 터져버린 지뢰로 왼쪽 다리가 사라지고 복부와 위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카파는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숨이 멎게 된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왼쪽 손에 쥐어져 있었던 카메라는 미국으로 옮겨져 이 사진으로 현상되었다. 올해는 로버트카파 탄생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시간이다. 수많은 이들이 아직도 그를 기념하고 추억한다. “그는 아주 활기찬 사람이었기에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하루는 너무나 길고 힘들었다.”(헤밍웨이),“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위해 몸부림 쳤다.”(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주체할 수 없는 연민. 로버트 카파를 통해 20세기의 전쟁은 살아있는 역사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전시 문의: 02-39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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