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축구의 대륙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축구에 가장 광적으로 빠져있는 두 도시가 있다.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이다.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전통의 명문 구단인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의 공통점은 비단 축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도시는 세계적인 예술가를 배출했다는 교집합을 갖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리버풀은 비틀즈를 낳았고 바르셀로나는 바로 이 예술가를 낳았다. 바로 안토니 가우디다. 그리고 안토니 가우디의 전시가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위대한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안토니 가우디를 조망하는 <바르셀로나를 꿈꾸다. 안토니 가우디展>이 오는 7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건축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거장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탁월한 미적 감각과 독창적 양식으로 세계 건축과 예술, 디자인분야의 새로운 장을 연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도면, 디자인 도면, 스케치, 캐스트, 가구, 장식, 당대의 기록 사진, 멀티미디어, 건축물 모형 등 300여점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예술사에 있어 가장 풍부하고 강한 개성을 지닌 안토니 가우디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남긴 문화유산을 향해 떠나는 뜻 깊은 여정으로 안토니 가우디가 어떻게 20세기 건축과 예술의 전무후무한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에 이번 전시는 안토니 가우디의 개인적인 기록과 작품에서부터 시작하여 한 예술가가 작업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미발표 작품들이 본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바르셀로나를 꿈꾸다. 안토니 가우디展>은 그가 그린 원본 도면과 스케치, 당대의 기록 사진과 모형, 가구, 트렌카디스(깨진 사기 조각으로 만든 모자이크) 조각 등을 통하여 예술가로서의 안토니 가우디 뿐만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가우디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전망이다. 이 외에 그와 함께 일하던 협력자들의 증언과 작품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토니 가우디 자신의 단어를 통해 듣는 그의 작품에 대한 깊은 생각들이 우리에게 과학적인 이성의 대가이자 자연을 사랑하던 관찰자, 친 환경론자이자 노동자에 대한 사회 의식에 깨이 있던 안토니 가우디라는 복합적인 인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안토니 가우디는 자신의 대표작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통하여 한 도시의 지형적, 문화적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이 성당은 여타 성당과 확연히 구분되는 독특한 형태와 장엄한 스케일, 혁신적인 구조, 섬세한 장식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는 자신의 사후에도 지속적인 건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많은 도면과 모형을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사후 100주년을 맞는 2026년 완공 예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필두로 그의 독창적인 건축물들은 바르셀로나 곳곳에 살아 숨쉬며 현재와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다음 세대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은 유네스코도 인정하였다. 유네스코는 1984년,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물이 19세기 건축의 발전에 미친 영향과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여 카사 밀라와 구엘 저택, 구엘 공원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였다. 그리고 2005년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탄생의 파사드와 지하 예배당, 카사 비센스, 콜로니아 구엘 지하 경당, 카사 바트요 등 네 개의 작품을 추가로 등재하였다.
또한 가우디를 깊이 존경하며 그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 믿었던 스페인의 화가 거장 후안 미로가 그를 기리며 헌정한 작품들을 통해 트렌카디스의 타일과 유리조각들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어떻게 재탄생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후안 미로의 개인 서재에 보관하고 있던 안토니 가우디와 관련된 다량의 서적과 문서를 통하여 그에 대한 후안 미로의 관심과 존경까지 엿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제 갓 건축가로서 일을 시작하는 말쑥하고 기품있는 청년 안토니부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작업실에서 극도로 검소한 삶을 사는 말년의 그가 병원의 작은 침대에서 세상을 떠나 수많은 사람들이 추모하는 장례식에서 매장되기까지의 연대기를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안토니 가우디가 전차에 치어 사망한 직후 본을 뜬 그의 데스 마스크, 그의 조수였던 프란세스크 베렝게르가 그린 구엘 공원의 안토니 가우디의 집 스케치, 리카르드 오피소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작업실에서 그의 조수로 일할 시기에 제작된 훌륭한 미발표 수채화와 당대의 기록사진은 안토니 가우디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안토니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건축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바르셀로나 건축학교의 교장이었던 엘리아스 로젠은 1878년 안토니 가우디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 제가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광인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안토니 가우디는 과연 천재였을까 아니면 광인이었을까. 세월이 흘러 2015년. 이 말 한마디면 그가 어떠한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바르셀로나는 안토니 가우디를 메시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김성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