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페드라’하고 외치는 소리에 묻어버렸던 영화 <페드라>는 안소니 퍼킨스와 멜리나 메르쿠리 주연의 영화로 우리나라에는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흑백영화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이드라 섬과 수니온으로 가는 해변도로를 배경으로 하는데 연인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또한 연중무휴로 바다 수영을 즐길 수 있는 해변도, 어부들이 갓 잡은 생선을 파는 어시장도, 작렬하는 태양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즐기는 모습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포세이돈 신전 옆의 해변 <페드라>의 여주인공이었던 멜리나는 1981년에 문화부 장관이 되고 파르테논 신전의 유물 반환에 힘쓰게 된다. 1985년 영국의 노동당으로부터 자신들이 집권하게 되면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크로폴리스 지하철역의 한 면에는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멜리나가 손을 흔드는 사진이, 다른 한 면에는 반환 받아야 할 유물의 모조품이 걸려있다.
아테네 시내의 바이런 동상 아테네인들이 선택한 신은 아테나 여신이었지만 해상을 장악했던 아테네로서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홀대할 수 없어서 땅 끝의 바다와 만나는 첫 자리에 포세이돈을 위한 신전을 건립하게 된다. 자신의 삼지창으로 만들어 낸 바람을 맞으며 2500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는 포세이돈 신전에는 낙서들도 많이 있는데, 그리스를 그리도 사랑했던 바이런이기에 그가 직접 새겼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바이런의 이름도 발견된다.
블리아그메니 호수 (출처 : http://www.limnivouliagmenis.gr) 지중해는 바다 특유의 비릿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없다. 정어리를 밑밥으로 낚시를 하면 장어와 문어가 낚이는데 문어를 잡으면 발을 다 벌리고 오기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손맛이 아주 좋다. 파도가 별로 없고 6월에서 10월 사이에는 온도가 적당해서 오랜 시간 바다수영을 하기 좋아 가끔 혼자서 생활했을 때 바다로 퇴근하여 수영을 즐기다 집에 들어가곤 했는데, 석양이 지는 지중해를 포도주를 담고 있는 그릇으로 비유했던가?
포로스의 lovebay 아테네에서 육로로 테세우스 모험의 여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펠로포니소스 반도의 트리지나(고대에는 트로이젠)에 도착하는데 200m 거리로 마주하고 있는 포로스 섬이 보인다. 배로는 피레우스 항구에서 출발하는 플라잉 돌핀으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포로스까지 가는 길로 자연 풍광을 즐기기엔 차를 렌트해서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고린도 운하를 지나 절벽과 함께 보이는 바다의 풍경을 보면서 테세우스의 고향을 거쳐 약 2시간 30분이면 포로스 건너편 육지 마을 갈라타스에 도착하게 된다. 섬과는 짧은 거리임에도 연결되는 다리가 없다. 아마도 차를 이용하여 섬에 방문하는 여행객의 수가 많아진다면 만들겠지만 현재는 없다. 갈라타스와 포로스는 배로 연결되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거의 없고 차와 함께 약 10분 정도면 섬에 들어갈 수 있으니 섬에서의 이동에도 용이하다.
배에서 바라 본 포로스 (스페리아) ‘좁고 곧은’이라는 뜻을 가진 스떼노스 뽈스모스에서 섬의 이름이 유래되며 한 개의 섬이 아닌 두 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살지만 작은 스페리아 섬과 소나무가 많고 아름다운 해변이 많은 훈풍의 의미를 가진 칼라브리아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개의 섬은 10m 남짓의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섬의 안쪽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포세이돈 신전이 있다. 신전의 터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규모가 대단했음을 볼 수 있다. 포세이돈이 델피를 아폴론에게 넘겨주고 차지했을 만큼 좋은 자리다. 포세이돈이 그곳에 있다가 건너편 트로이젠의 아이트라 공주와 잠자리를 하고 난 후에 여행 중이던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과도 잠자리를 같이 하여 테세우스가 태어난 것이다.
미아울리스 소피아 로렌 주연의 <소년과 돌고래>, 멜리나 메르쿠리 주연의 <페드라> 영화 촬영의 장소가 된 후에 유럽의 예술가, 작가들이 이드라 섬을 찾아 작업실을 꾸미기도 했다. 유명인사들이 즐겨 찾는 섬으로 눈길이 닿는 곳마다 풍경화가 그려지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곳마다 아름다운 엽서를 연상하게 된다.
포로스의 풍경 포로스와는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드라 섬은 차가 없는 섬으로 걸어 다니거나 대중 교통수단으로 해변을 오가는 배를 이용할 수 있다. 이드라 섬은 ‘물에 젖어 있다. 축축하다.’에서 유래되며 물이 풍부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대에는 나무가 많고 곳곳에 샘이 솟아 물이 풍부했지만 화재와 약탈로 인해 벌거숭이가 되어 회복을 못한 모습이다. 척박한 섬이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섬 주민들은 배를 건조하여 무역업을 하게 되었고, 그리스 독립전쟁에서는 선주들이 가지고 있는 배를 이용하여 해상권 장악에 힘을 보태게 된다.
이드라의 모습 애기나 섬은 기원전 7세기에 이집트, 페니키아와의 교역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유럽에서는 은화를 최초로 주조하여 사용한다. 한 때 이 지역의 최강자이기도 하였지만 작은 섬의 한계를 벗지 못하고 아테네에 굴복한다.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침략하여 살라미스 해전이 있을 때 애기나 선단도 큰 힘을 보태게 된다. 그리스 역사에 있어서 이 섬은 다시 한번 중심에 서게 되는데, 터키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무렵인 1827년 이 섬이 임시 정부의 수도로 세워진다.
넥타리오스 수도원 (출처 : 위키피디아) 강성했던 애기나이기에 파르테논만큼은 아니지만 애기나의 반대편 항구 쪽에 아페아 신전이 있다. ‘아패아’라는 말은 ‘나타나 보이지 않는’, ‘지혜’라는 뜻으로 애기나 섬의 지방 신이나 아르테미스 또는 아테나 여신의 지방화 된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현재는 24개의 기둥이 남아 있는데 아테나 여신이 트로이 전쟁을 응원하는 모습이 있었다. 애기나는 트로이 전쟁의 비운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증조모가 되기도 해서 트로이 전쟁의 묘사가 있었나 보다. 걸출한 조각품 몇 개는 뮌헨의 그리프토텍 조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신다그마 광장의 무명용사의 비가 아페아 신전 박공에 있던 것인데 원본은 모로코 박물관에 있다.
글·사진 배상환 제공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02-723-3403
배상환 가이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기술자로 평범한 직장에 다녔다. 남다른 점이 있다면 그리스에서의 25년 삶 중에 20년간 그리스인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그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삶을 가깝게 접하며 다양한 현장을 경험한 것이다. 그리스에서의 오랜 삶을 통해 체화된 그리스인 특유의 포근함과 다정함, 여유로움을 갖고 있다. 지금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를 찾는 여행자들이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유로자전거나라 그리스 지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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