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쓰는 것인가에 대한 반론을 몸소 보여준 작가가 있습니다. 아니, 그래서 특별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 『치매도 시가 되는 여자』로 첫 작품집을 발표한 작가 류자 시인. 그녀가 마음과 몸으로 체득한, 살아 있는 감정의 표출이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류 작가는 시어머니의 발병으로 말미암은 시라며 목소리를 낮췄습니다.
“8년 전 시어머니께서 집을 찾지 못하고 깜박깜박 하는 증상이 나타날 때었나 봅니다.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하자 ‘그럴 리 없다’란 대답이 돌아왔지만, 심상찮은 증상이 이어지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치매가 30% 진행되었다는 고지서 같은 답변을 들었어요.”라며 시어머니의 치매증상이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현모양처가 꿈이었다는 류자 작가에게 계획에 없던 시어머니의 치매증상은 많은 당혹감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류 작가는 “대소변을 흘리시거나, 한 밤 중에 우두커니 서 계신 시어머니와 눈이 마주칠 때는 소스라치게 놀라기 일쑤였다.”며 힘든 시기도 있었노라고 진솔하게 밝혔습니다. 그녀는 “그나마 치매가 악화되기 전 찾아 증상을 더디게 진행시킬 수 있었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형제, 가족 덕분에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씩 형제들이 어머니를 보살피며 전에 없었던 끈끈한 가족애를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말캉말캉한 감정이 두터워졌을 법도 한데, 류자 작가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간호하며 시를 쓸 수 있었던 뒷심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그녀는 “글쓰기는 오래 전부터 함께 해오던 것이었지만, 블로그와 SNS 등에 일기처럼 써 오던 것이 모여 자연스럽게 시집까지 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화려한 미사어구보다 솔직하게 느낀 점을 썼다”며 “가족의 이야기를 쓰기가 두려웠지만 아마도 비슷한 환경을 가진 분들에게는 남일 같지 않았을 것이고 이 분들의 응원으로 작품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고 류 작가는 설명했습니다.
형제들이 순번을 정해 어머니를 모시게 된 후부터 류자 작가는 비로소 자신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답니다. “도시농부봉사회를 통해 텃밭 가꾸기와 녹색정원 만들기 등 활동을 하고 있어요. 보는 것에서 먹는 것까지 손수 무농약으로 재배하고 도서관이나 학교, 공공기관을 찾아 봉사활동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더 느끼게 된다”고 말한 류 작가는 “농부의 마음이랄까요. 정서적으로 풍요로워 지는 것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도시농부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요.”라고 소개했습니다. 강서구문인협회와 강서까치뉴스 기자로 활동까지 하고 있다는 류 작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바쁜 와중에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기에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아들 전민재 군이 오는 8월 군복무를 대신해 의무경찰로 입소하게 되었다고 덧붙인 류 작가는 “시어머님을 보살피며 쓴 시를 통해 제 마음을 읽은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아들 전민재 군은 “어머니의 글을 읽고 어떤 감정을 지니고 생활하시는 지 알 수 있었고 존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이셨다”고 웃음을 지었습니다. 류 작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녀는 “굳이 희망이 있다면 옆집 아줌마 같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어렵지 않고 편안한 글로 여러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서로가 소통이 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는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군에 가는 전민재 군과 어려운 환경에서 의미 있는 첫 시집을 펴낸 류자 작가와 가족 분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또 류자 작가처럼, 가족 분들 중 치매를 비롯한 병환 때문에 마음 졸이고 고통 받는 여러 분들에게도 류 작가의 『치매도 시가 되는 여자』가 큰 위로가 되어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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