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긋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타인의 인생에도 개입하지 않는 삶의 형태를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무해의 시대에 사회적 연대와 돌봄의 가치를 말하는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은 이달 15일 창작 신작 <은의 혀>를 홍익대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다.
<은의 혀>는 <견고딕-걸>, <누에> 등 뛰어난 연극적 상상력으로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2021년 대전창작희곡상 대상, 2021년 통영연극예술축제 희곡상을 받은 박지선 작가의 신작이다. 국립극단의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작가]를 발판 하여 1년여 간의 집필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은의 혀>는 작가가 치열한 고심 끝에 완성해 나간 한 줄 한 줄의 대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박지선 작가는 “박지선만 쓸 수 있는 희곡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라며 일상어로 쉽게 풀어쓴 스낵콘텐츠들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 역행하는 세찬 문학성으로 언어의 미학적 정수를 보여주는 극본을 완성했다.
박지선 작가는 <은의 혀>에서 주로 주변 인물로 소화되거나 무대의 주역으로 만나기 힘든 중장년 여성들이 겪는 노동과 돌봄의 서사를 아름다운 문체로 집필해 그녀들의 ‘서로 폐 끼치는 삶’을 따뜻하게 조명했다. 중장년 여성들이 일하는 돌봄 노동의 현장을 다룬 신문의 짧은 기사에서 박지선 작가는 사회적 주류의 시선에 벗어나 있지만 분명하고 또렷이 존재하는 인물들을 발견하고는 작품을 구상했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은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간다. 조문을 갈 때마다 ‘은수’는 아들의 장례를 치를 때 함께 했던 오지랖 넓은 상조 도우미 ‘정은’을 마주친다. ‘은수’는 ‘정은’을 피하려고 하지만 ‘정은’은 ‘은수’에게 끝없이 말을 걸고, 밥을 권하고, 술을 건네고, 마주 앉는다. 어느 날 ‘정은’은 자신은 반짝이는 “은의 혀”를 가졌다는 허랑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가득한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둘의 경계선은 점차 흐릿해지고 서로의 한편에 기댈 언덕을 마련한다.
<은의 혀> 연출을 맡은 윤혜숙은 “전쟁, 성차별, 인종주의 등 다양한 사회적 사안들은 개인마다 연관성에 따라 거리감을 모두 다르게 느끼겠지만 ‘돌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예외 없이 주고받게 되는 것”이라며 “꼭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지역사회부터 반려동물까지 각자 경험하는 돌봄의 모습들은 다양하지만, 필수불가결한 생애주기의 사안이라는 점에서 모든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라며 작품의 주제 의식이 가진 보편성을 말했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으로 해체를 목도하는 한국 사회에 담담하지만 활기차게 손 내미는 <은의 혀>는 9월 8일까지 이어진다. 소외 없는 관람 기회 제공과 장벽 없는 연극을 목표로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접근성 매니저가 상주한다. 한글자막해설, 접근성 테이블, 이동지원을 전 회차 운영하며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3일간은 터치 투어를 진행한다. 8월 25일에는 공연 종료 후 작가 박지선, 연출 윤혜숙, 배우 전원이 참석하는 ‘예술가와의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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