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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현재에게 말을 건 도시, 밀란

이탈리아 밀란 투어 | 2019년 07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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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밀라노라는 이 도시의 이름이 내 머리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 아마도 94년이 아니었을까? 아침 7시 50분경, 국민학교 2학년생이었던 때 그날은 뭐에 홀렸는지 등교를 앞두고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한 남자가 강하게 때린 하얀 물체가 아름다운 곡선으로 하얀 네트를 흔들었다. 마치 영화를 보듯, 내 인생의 중요한 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었다. 홍명보 선수가 상대팀 독일의 골문을 흔든 골. 그 골은 내게 축구선수의 꿈을 꾸게 만든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내게 주었다. 그렇게 94년 미국월드컵을 통해 축구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대회의 마지막 경기 이탈리아와 브라질과 의 결승전, 지금도 축구하면 빼놓을 수 없는 두 나라의 선수들은 90분과 연장 혈투에도 우열을 가리지 못한 채 승부차기에 들어섰다. 그 결과 운명의 장난과도 같이 이탈리아의 판타지스타라고 불리던 로베르트 바조의 실축으로 우승컵은 브라질의 손에 들어갔다. 바조의 눈물을 통해 난 이탈리아를 알게 되었고, 그 선수가 월드컵 이후 옮겨간 팀이 AC 밀란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선수의 팀 커리어에 인터밀란 역시 속해 있다는 사실도 너무나 명확히 알고 있다. 이 도시는 그렇게 나의 10대를 적셨다.
대학생활에 한창이었던 나의 20대, 이제와 생각해보면 미디어를 전공하던 내가 지리학이라는 학문을 다루는 학과로 전과를 한 것은 훗날 젊은 시절을 돌아볼 노후의 유즈만이 손꼽을 역대급 선택으로 남을 정도의 반향과도 같은 것이었다. 공간은 하나의 이유로 생겨나고 변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경에 두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파헤쳐가는 학문이 추구하는 방향성 때문인지 유독 깊진 않아도 다변적인 지식에 접근 할 수 있었고, 더불어 많은 유럽의 도시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내 대학 졸업 논문은 런던이라는 도시에 초점을 맞추었을 정도로 도시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20대였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밀라노 역시도 빼놓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 비해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동아시아의 ‘베세토(베이징-서울-도쿄) 라인’처럼 유럽 경제의 한 줄기를 담당하는 이 도시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터였다. 이탈리아의 공업과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패션의 도시는 축구로 자리 잡은 내 사고속의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어쩌다보니 이런 도시를 30대가 되어야 찾아 올 수 있었다. 물론 그 땅위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벅차지만, 조금은 늦게 오지 않았나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30대, 참 많은 것들이 내 몸에 새겨지고, 머릿속에 채워진 시간이다. 이 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패션, 경제, 축구로만 알고 있었던 이 도시는 전 세계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천재 '다빈치'의 도시이며, 과거의 영광이 오늘날의 예술의 번영으로 뜨겁게 호흡하는 도시였다.
그 도시를 호흡하고 싶었다. 로마에서의 지친 삶에 새로운 공기를 넣어줄 무언가가 필요해서 Day-off가 연속인 어느 날, 밀라노행 티켓을 구입하였다. 며칠 전에 티켓을 구입하면 가격이 저렴한 기차표이지만 나는 무려 편도 70유로(대략 8만 6천원)에 구입하였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갑작스레 정해진 여행이었기에. 여러 도시들을 목적지로 올려두고 고민을 거듭하였다. 그러던 중 너무나 큰 도시인 밀라노를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왜 난 아직도 이 도시를 찾아가지 않았던 것일까?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였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아니었기에.
이탈리아 남부의 보석 포지타노와 아말피, 모든 길의 시작 로마, 연인과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그리고 곧 기록으로만 만나볼 수 있을 베니스까지. 마치 영국 왕족들의 그랜드투어처럼 한국인들이 꼭 성지순례처럼 방문해야하는 국민루트가 되어버린 이곳들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들이 절대적인 이들에게 밀라노는 계륵과도 같은 도시였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의 긴 여행이 허락되지 않은 여행객들이 밀라노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같은 위도 상에 또 다른 도시 베네치아를 포기해야하는 일정과 동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라노는 그렇게 쉽게 사람들의 여행목록에서 쉽게 지워져서는 안 되는 도시이다. 많은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그렇듯 밀라노는 밀라노만의 독특한 경관과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수식어로 수식하지 않더라도, 위에 나열된 2가지만을 위해서도 밀라노를 방문해야 할 이유는 명확하지 않을까? 오히려 이 도시를 방문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려울 듯싶다. 그리하여 찾은 밀라노였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밀라노 중앙역까지 3시간, 짤막한 3시간동안 밀라노의 정보를 습득하기위해 책을 읽을 수도, 인터넷 검색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나는 그러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미 나에게는 이번 내 밀라노의 하루를 책임져줄 가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북쪽 토리노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와 남쪽 가르발디가 만났던 그 순간 같았으니, 이제 곧 통일과 같은 평화가 이곳 밀라노에 밀려오겠지요? 그 평화의 시간을 이제 적어 갑니다. 글·사진 : 유태식 가이드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02-723-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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