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애경 작가를 만났다. 때로는 붉디 붉은 선홍빛 꽃으로 피어나고 때로는 곱디 고운 치자빛 꽃으로 환생하는 그녀의 작품들. 쪽빛 나팔꽃과 보랏빛 등꽃, 순백의 백합 물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그리움의 향기로 물들어간다. 이 낯설고도 친숙한 꽃들의 물결은 마치 작가의 개별적 존재, 즉 페르소나(Persona)와 같아서 시시각각 알 수 없는 감동과 여운을 던져주기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백애경 작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작가를 직접 만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백애경 작가가 있는 전남 광양으로 향했다. 그림처럼 고운 가을 오후였다.
꽃의 심상으로 피워낸 인생의 아름다움 백애경 작가가 피워낸 꽃들, 그 꽃비 앞에 서면 누구든 행복해진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그리움, 순수를 향한 동경이라고 할까요. 오색찬란한 삶을 보듬는 꽃이야말로 세상 가장 아름다운 소재입니다.” 첫 눈에 보면 아름답고 자세히 보면 더욱 매혹적인 백애경 작가의 꽃들은 부드럽게 흐르는 물과도 같은 유연함, 형상에 집착하지 않은 자유로움,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그려가며 화려한 꽃의 왈츠를 연주한다. 작품 속의 꽃 하나 하나가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가 되어 삶을 연주하는 형태라고 할까. 오래 전 보았던 그 장소, 그 사람이 건네 준 데자뷰처럼 그렇게 다가오는 꽃이 백애경 작가의 작품이다. 백애경 작가는 순간 속에 이뤄진 우연과 찰나처럼 안료가 지니는 물성, 작가 특유의 직관과 감각을 통해 꽃이라는 일반적 상징을 은유적 대상으로 승화시킨다. 단연코 이제까지의 꽃과는 확연히 다른 꽃이 꽃일진대 작가는 대상의 어떤 포인트에 각별한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일까. 백애경 작가는 말한다. “깊은 슬픔, 맑은 눈물, 따뜻한 사랑. 티없는 웃음... 그 모든 것이 작업에 담겨 있지요. 나의 꽃에 열중하는 그 순간이 곧 자아를 찾는 시간이니까요.” 스스로를 증식하고 성장시키며 끝없는 생명력을 갈구하는 꽃의 물성은 또 하나의 에너지요, 실체를 벗어난 상징으로 다가오기에 백애경 작가의 꽃들은 강렬하면서도 순수하다. 마치 꿈 속에서 순간적으로 느꼈던 꽃의 이미지처럼, 인생 가장 찬란한 순간에 느끼는 희열과도 같이 백애경 작가는 다시 올 수 없는 순간들을 고운 끈으로 묶어두고 있다. “삶이라는 캔버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곳에 기쁨을 주었는지, 또 그 어떤 곳에 도달해 가는지에 대한 여정을 일깨우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생명의 환희를 통해 이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그런 순간들 말이지요.”
환희의 색채 속에 순수하게 피어나는 꽃의 섭리 서양화가 주는 원근, 명암, 입체감 등의 이론적 기법은 과감히 무시하고 꽃의 정형을 벗어난 자유로운 필법을 구사하는 백애경 작가. 그녀의 작품은 빨강, 노랑, 파랑, 녹색의 4원색과 보라색 계열을 주조색으로 하며 흰색과 검은색의 무채색으로 색채의 변화를 더하고 있다. 도발적이면서도 청순하며 거칠면서도 섬세한 그녀의 붓은 생성, 창조, 정열,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꽃을 부드럽고도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승화시켜낸다.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동경의 세계를 이미지화한 백애경 작가의 꽃은 여인이자 사랑이자 선(善)이라는 인간 본연의 경지에 맞닿아 있다. 본연으로 피어난 꽃에서 티없는 순수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물질문명 속에 유실해가는 인간의 자연한 감성을 되찾아주고 있다. 이는 곧 상처입은 영혼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치유의 과정과도 같아서 보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평화로운 곳으로 데려가 준다. 작가의 선험적 감각과 경험적 지식, 후험적 지혜가 아낌없이 반영된 백애경 작가의 작품 세계는 각진 세상을 모나지 않게 유영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미에 대한 독특한 감성에 감상하는 이의 마음을 곱게 포개는 그녀의 작품은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며 따사로운 안식을 공유하고 있다. 색과 형태로서의 꽃이 아닌 상징과 의미로 피어난 꽃. 보통의 존재를 가장 빛나는 존재로 변화시키는 백애경 작가의 붓터치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작품은 나와 감상자를 잇는 고리이자 매개체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백애경 작가는 (사)남부미협, (사)에뽀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예술인과의 교류와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지역 문화 예술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백애경 작가는 지난 5월 순천만 도솔갤러리에서 개최한 ‘꽃비, 꿈을 꾸며...’라는 타이틀의 개인전 이외에도 7번의 개인전과 아트시드니, 홍콩아트페어, 광주국제아트페어, 서울오픈아트페어, 대구아트페어에 초대 및 참여 국내외 활동을 진행하였다. 또한 10월 7일까지 코엑스에서 개최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계속해 왔다. 또한 4년 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작품을 구상해 벨기에 출신 여자 배우 오드리 헵번과 화가 자신이 그림 속에서 교감하는 모습을 표현한 '향기에 머물다'를 광양시 커뮤니티센터에 기증, 시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백애경 작가는 “제 자신과 저의 그림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취미로만 작품을 한다면 전시나 아트페어를 참여할 필요는 없겠지요.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저는 제 작품이 감상자와 저를 이어주는 작은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꽃과 잎사귀, 바람과 흙이 가져다주는 여유와 평안같은 것들 말이지요. 그렇게 될 때 제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 이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보곤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원천은 바로 가족이다. 함께가 아니었다면 외롭고도 어려웠을 작품의 길. 그 활동에 힘이 되어 준 이는 남편인 김재무 도의장(전라남도의회)이다. 도의회 3선의원이기도 한 김재무 도의장은 바쁜 도정활동 중에도 틈틈이 아내의 작품을 살펴주는 세심한 가장이다. 백애경 작가는 “묵묵이 저를 지켜봐주는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백애경의 꽃은 없었을 것”이라며 가족이야말로 작품 활동의 가장 큰 밑그림이라 소회했다.
피었다지고 졌다가 다시 피는 것 꽃과도 같은 인생. 그 삶을 아름답게 그려가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소명인지 모른다. 모나고 각진 삶의 편린을 꽃잎으로 곱게 덧칠해주고 있는 백애경 작가. 그녀야말로 진정한 힐링의 화가요, 상생의 작가다. 집착하지 않기에 자유롭고 자유롭기에 아름다운 백애경 작가. 그녀로부터 꽃은 또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생명체로부터 우리는 긍정과 감사라는 선물을 받아 안는다. 세상을 포용하는 커다란 품. 오늘, 백애경 작가의 꽃잎이 이 세상 모든 이의 가슴에 흩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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