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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이와 고성(古城) 라인 계곡에 모여든 예술가들

독일 라인 계곡 투어 | 2016년 08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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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서쪽 국경 안쪽으로 남쪽의 스위스에서 발원해 북쪽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흘러 북해로 빠지는 라인 강 중상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코블렌츠에서 뤼데스하임(혹은 빙겐)까지 이어진 이 지역을 특별히 ‘라인 계곡’이라 부르는 것은 이 구간이 강의 수면보다 약 50m 가량 높은 지대에 흐르던 물의 침식으로 점차 강이 넓어져 깊숙이 패인 계곡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이 지역 여행을 했을 때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체 언제부터 저 가파른 계곡 언덕에 포도나무를 심어 두었을까 하는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저 계곡 위 암벽 위에 성을 지어놓은 건 과연 누굴까 하는 생각이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크고 작은 고성과 독일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리슬링 포도종의 와인은 예부터 많은 여행자들을 불러 모았고 예술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후기에 이르기까지 라인 강의 자연 경관과 낡은 성채의 자태에 매혹되어 이곳을 배회하던 화가들과 시인들이 추구하던 예술세계는 ‘라인 로맨티시즘 Rhine romanticism’이란 말로 회자될 정도로 라인 강은 독일 문학과 예술의 흐름 속에서도 그 호흡을 같이 해왔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서른 개의 고성과 굽이굽이 강줄기에 녹아있는 전설들을 찾아가는 것이 라인 계곡의 관전 포인트이다.
“움직이다. 흐르다.”라는 뜻의 고어 라이에(reie)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 강을 독일인들은 유독 ‘아버지 강’이라 부른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까지 여러 나라를 지나 1230km를 흐르지만 독일을 지나는 구간이 제일 길기에 우리는 ‘라인 강’이라면 먼저 독일이 떠오른다. 
첫 독일 생활을 뒤셀도르프(라인 강이 흐르는 독일 서부의 도시)에서 시작한 내게 라인 강은 오래도록 활동 반경의 기준이 되어왔고, 마인 강이 흐르는 프랑크푸르트 인근에 사는 지금도 이 강이 흘러 라인 강으로 합쳐지는 걸 알기에 라인 강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유람선을 운영하는 회사와 구간은 다양하다지만 가장 사랑받는 코스는 뤼데스하임-빙겐-로렐라이-장크트 고아르-코블렌츠 구간이다. 늘 추천할 경로는 뤼데스하임(Rüdesheim)에서 출발해 장크트 고아르(St. Goar)에서 내리는 유람선 여행 코스로 약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어느 도시를 거점으로 여행하든 곳곳에 좋은 와인을 내놓을 식당들과 아담한 호텔, 강 둔치엔 캠핑장이 자주 눈에 띈다. 특히 라인가우(Rheingau: 라인 강 유역의 와인 산지) 지역은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가 많아 주말이면 와이너리 앞 주차장은 독일 내에서도 소문난 모터사이클 동호회를 포함한 최고급 올드-타이머 차량들의 각축장으로 변한다. 
계곡의 가파른 언덕마다 가득한 포도나무들. 이곳에 포도를 심고 본격적인 와인을 생산해 낸 역사는 로마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했던 이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원이나 와인업자들은 추운 독일에서도 잘 자라는 리슬링 품종을 택했고 자연스레 일조량을 늘리기 위해 강가 경사를 그대로 살린 계단형 혹은 테라스식으로 대범하게 농장을 발전시켰다. 독일 대부분의 포도원이 강을 끼고 있는 건 강물에 비친 반사광을 최대한 포도 잎사귀에 담으려는 노력이었다. 거칠지만 토양의 기운이 좋은 라인 강가 가파른 언덕에서 자란 포도는 섬세한 태양의 향기를 가득 머금고 세계 최상급의 리슬링 와인으로 재탄생 된다.
독일은 고성의 나라라고도 한다. 지역마다 고성의 특징이나 시대적 축성의 배경이 다르겠지만 특히 라인 계곡에 있는 30여 개의 고성과 요새는 그 자연 경관과의 어울림이 뛰어나다. 가장 오래된 요새는 과거 로마 군대의 주둔 당시 축성된 군사요새로 라인 강의 왼편에 있었다. 로마인들의 요새와 군용 도로는 그들이 물러간 5세기 이후 카롤링거 가문 등의 왕가가 관리했다. 
유람선은 이제 로렐라이 언덕 아래를 지난다. 다른 곳보다 물살이 거세고 바람이 절벽을 치며 소리를 내고 지나는 곳, 노랫소리로 뱃사공들을 홀려 수없이 많은 배들이 난파되었다는 전설의 언덕이다. 이 유명한 라인 계곡의 전설은 독일의 많은 작가들을 통해 시나 희곡으로 전해졌다. 특히 ‘하인리히 하이네’가 1824년 지은 로렐라이 시는 노랫말이 되어 이제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민요가 되어버렸다. 옆집 사는 할머니가 로렐라이 인근에서 시집온 분인데 내가 로렐라이를 한국어로 부르자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독일어로 된 악보까지 내게 챙겨주시더라.  
로렐라이 언덕 인근에는 이 마법에 걸린 요정의 전설 외에도 또 다른 전설이 독일인들에게 사랑받아왔다. 이 전설은 훗날 ‘리하르트 바그너’에 의해 [니벨룽겐의 반지]란 오페라로 재탄생한다. 1848년부터 약 26년이 걸려 완성된 이 오페라를 바그너 혼자서 대본을 쓰고 음악을 작곡했다. 4일 동안 연이어 공연해야 끝을 보는 이 오페라, 대체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장그트 고아르 St. Goar’에 드디어 도착했다.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절대반지에서 누런 황금색이 우러나온다는 라인 강을 따라 두 시간 가량 이어진 유람선 여행은 리슬링 와인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많은 예술가들의 추억과 함께 지루할 겨를이 없다. 귓가에 울리는 로렐라이의 민요를 음미하며 장크트 고아르 언덕에 오르면 라인 계곡의 많은 성채 중 가장 역사적 무게감이 있는 성에 오를 수 있으니 그곳은 로렐라이 언덕과 장크트 고아르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경관을 선사한다.
출출해진 여행자여 잘 구워진 플람쿠헨(독일식 구운 피자)에 리슬링 와인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땀이 식기 전에 성채 투어도 놓치지 말자. 라인 강의 여름은 낮이 제법 길다. 독일의 다채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여행자들에게 잘 어울리는 이곳에서 라인 강의 묵직한 매력을 만나보자.
 
글 : 김원호
사진 : 김원호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02-723-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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