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로맨틱 가도의 남쪽 끝에는 알프스 골짜기와 호수들을 감싸 안은 도시 퓌센이 있다. 3년 전에 찾아갔던 한 여름날엔 난데없이 우박이 쏟아져 나를 당황하게 했던 이 산골 마을은 독일인들이 꼽는 최고의 휴양도시이기도 하다. 산책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연 조건을 갖춘 작은 도시는 계절에 따라 스키장, 캠핑장, 수영장, 골프장을 제공하며 많은 이들을 불러 모은다. 백조의 성이라고도 부르는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ß Neuschwanstein)은 이 도시에서 차로 십오 분 거리의 슈반가우 지역에서도 제법 험준한 산세가 시작되는 골짜기 위에 세워져 있다.
철 따라 변해버릴 숲과 하늘색이 전하는 느낌을 기억하는 방법은 성의 안쪽 골짜기 위에 놓인 마리엔브뤼케(마리엔 다리) 위에 올라 사진을 담는 것이다. 슈반가우에서 마리엔브뤼케와 성까지 오르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천천히 걸어 산길을 오르는 방법, 셔틀버스를 타는 법, 마차를 타고 오르는 것이 그것이다. 마차에 앉아 말 등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바라보며 성에 올랐다면 이제는 자연스레 언젠가 성을 지었을 바이에른의 왕이 궁금해질 차례이다.
비텔스바흐(루드비히 2세와 오랜 독일 남부의 통치자들을 배출한 가문) 가문 특유의 훤칠한 인물이 빛났던 루드비히 2세. 평생 결혼도 거부한 채 국고를 탕진시키며 3개의 성을 지었던 군주, 미치광이 왕으로 몰리며 결국 퇴위 당한 왕, 퇴위 당한 지 3일 만에 바이에른의 한 호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기까지 그를 부르던 많은 별명에는 백조의 왕, 동화의 왕, 미치광이 왕이 있었다.
뮌헨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뮌헨의 님펜부르크 성을 방문하면 드넓은 정원 속에 숨겨진 궁전들을 둘러보며 비텔스바흐 왕가의 화려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황금으로 빛나는 마차들과 당대 최고의 미녀들을 초상화로 남겨둔 방을 감상하는 것은 님펜부르크 성 최고의 볼거리로 알려져 있다.
그가 끝내 완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했던 노이슈반슈타인 성, 그가 꿈꾸던 동화의 세계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성에 입장해 내부의 통로와 방들을 둘러보면 알게 되니 동화 속 세상 한가운데에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와 그의 오페라가 있었다.
결혼식을 끝으로 유유히 사라져간 백조의 기사처럼, 미완성의 성을 남겨두고 떠난 루드비히 2세의 죽음도 신비에 싸여있다. 자신을 미치광이 왕으로 부르던 시민들에게 상처를 받아 자살을 택한 것인지 혹은 그의 국고 탕진과 정치적 무능함 그리고 성적 취향에 대한 반감으로 살해를 당한 것인지, 그 어떤 곳으로의 탈출을 꿈꾸며 호수를 건너다 사고를 당한 것인지 역사는 끝내 답을 남기지 않은 채 1886년 비운의 바이에른 왕은 궁정 의료진들에 의해 정신병 판정을 받은 지 5일 후인 6월 13일 슈타른베르거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내려다보면 크고 작은 알프스의 산봉우리들과 굽이굽이 물줄기들이 모여 이룬 호수들이 숨을 멎게 할 듯 여행자들을 압도한다. 그리고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성, 루드비히 2세의 부왕(막시밀리언 2세)이 사들여 개축했다는 호헨슈반가우 성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바로 이곳에서 루드비히 2세는 어린 시절을 보내며 예술적 취미를 키워갔고, 군주로서의 삶을 대신했던 동화 속 세상을 향한 탐미가 시작되었다.
죽기 전 루드비히 2세는 이런 말을 남긴다. 군주의 성이 관광지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죽게 되면 이 성도 폭파하라. 물론 이 성은 오늘날까지 남아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이 되었다. 알프스 대자연의 품속에서 역사 예술이 함께 펼쳐 보일 동화의 성 노이슈반슈타인을 만나보자.
글·사진 김원호 제공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02-723-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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