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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몰고 가버린 한 이민자의 기구한 운명

<이민자> | 2015년 09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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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읽히는 작품에 선사하는 칭호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시드니 루멧의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등은 대표적인 고전 작품으로 시간을 넘나들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킨다. 그런데 9월 3일에 개봉한 이 영화, 심상찮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영화 <이민자>는 굳이 저 멀리 미래에 다녀오지 않아도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이란 확신을 들게 한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의 공통점은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소재로 주제 의식을 명확히 드러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 혹은 이해를 하게 하여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영화 <이민자>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우선 <이민자>는 ‘이민자’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시간은 1921년, 공간은 뉴욕에 맞춰져 있다. 즉, 지금 영화를 보는 우리와는 말 그대로 생면부지의 사람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모험을 떠나는 이의 가혹한 삶, 그리고 그 뒤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절망은 우리의 인생과 정확히 맞닿아있다. 단지 시간과 공간만 다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 <이민자>를 보면서 우리가 ‘이민자’가 아님에도, 어쩌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이들에겐 ‘가해자’의 입장일지도 모르는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은 것이다.
1921년 뉴욕, 폴란드의 여인 ‘에바’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뉴욕 엘리스 섬에 도착한다. 하지만 동행한 여동생에게 들이닥친 뜻하지 않은 입국 거부로 그녀는 맨하탄의 빈민가에 홀로 남겨진다. 이때 일자리를 소개시켜주며 그녀에게 다가온 댄스홀 밴디츠 루스트의 호스트 ‘브루노’의 도움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려 하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그의 이중적인 면모에 ‘에바’의 삶은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기구한 ‘에바’의 두 가지 바람은 동생과 재회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소망을 품은 채 살아가는 ‘에바’에게 매력적인 마술사 ‘올란드’가 운명적으로 그녀의 삶에 들어오면서 ‘브루노’와 ‘올란드’ 그리고 두 남자 사이의 ‘에바’는 또 한 번 극단적인 인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은 하루 만에 주식이 2, 3배 뛰는 그야말로 유례없는 번영의 시대를 맞이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조어도 이때 생겨난 것.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의 이민을 시도했다. 하지만 영화에 조명된 것처럼 이민자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그저 감언이설에 불과했다. 불안한 신분과 사회의 인식 속에서 이민자는 절대 ‘을’ 신세를 면치 못했고 이를 악용하는 ‘갑’의 횡포에 놀아나는 노리개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군다나 1차 세계대전으로 이미 황폐해진 모국에는 희망이 없던 이민자 ‘에바’였기에 그녀는 갖가지 폭력과 술수를 살아남기 위해 받아들인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한 것처럼 삶이 순도 100%로 절망적일 순 없는 법. ‘에바’에게도 잠시잠깐 희망(‘올란드’)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고, 썩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증오할 정도로 나쁘지도 않은 필요악(‘브루노’)이 그녀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하지만 이 둘 역시 ‘에바’를 완전히 구원하지는 못한다. ‘에바’를 구덩이에 빠뜨린 건 ‘사람’이 아닌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덩이에 빠졌다고 그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그 어떤 삶의 희망도 없을 것이다. ‘에바’는 진흙탕과도 같은 이민생활 속에서도 살려 달라 허우적대고 도움의 손길도 요청하며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에바’가 시대와의 긴 사투 끝에 영화가 끝나기 직전 비로소 동생을 만나게 된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삶은 모험하는 것이고 이민 역시 모험이다. 모험을 통해 절망을 극복하려 했을 때 설령 더 커다란 절망에 빠질지라도 작은 희망은 놓치지 않아야하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유감스럽게도 시대는 언제나 똑같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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